후발주자인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자산은 전국 곳곳의 점포입니다. 소비자 인근에 있는 마트·백화점·슈퍼·편의점을 ‘물류기지’로 활용하면 e커머스보다 더 빠르게, 신선한 먹거리를 보낼 수 있습니다.
신선식품을 경쟁력으로 내건 대형마트가 앞장섰습니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4월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을 출범하며 롯데마트의 ‘오프라인 점포 물류기지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매장 천장에 레일을 설치해 주문이 들어온 제품들을 모아 올려 뒤편의 배송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스마트 스토어’, 매장 후방에 배송센터를 구축한 ‘세미다크 스토어’를 운영합니다. 이마트는 전국 140여개 매장 중 110여개 매장 뒤편을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 쓱닷컴의 ‘쓱배송’을 처리하는 ‘P.P센터’로 운영합니다.
여기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매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면적을 줄이긴 했지만 점포를 찾는 오프라인 소비자들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프라인 유통기업이라는 뿌리 때문이지요.
그런데 롯데쇼핑이 최근 이 뿌리를 흔드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롯데쇼핑 산하의 롯데슈퍼와 롯데마트 일부 점포를 선정해 슈퍼는 전체를, 마트는 영업 면적의 절반 가량을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MFC)로 전환하는 작업입니다. 이른바 영업을 하지 않는 점포 ‘다크 스토어’입니다. 스마트 스토어와 세미다크 스토어에 이은 세 번째 매장의 물류 거점화 모델이지요. 수십 년간 ‘집객’이었던 오프라인 점포의 역할을 물류로 과감하게 바꿔 배송의 효율성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입니다.
롯데쇼핑이 구상하는 다크 스토어 모델은 이렇습니다. 롯데마트의 경우 점포당 면적이 평균 2800~3000평대입니다. 이중 1000평 이상을 물류센터로 전환합니다. 예컨대 지하 1층~2층까지는 영업을 하고, 3~4층은 매장을 빼고 물류센터 기지로 바꾸는 겁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롯데슈퍼는 한 권역에 중첩되는 점포들을 중심으로 선정해 영업을 중단하고 ‘다크 스토어’로 바꾸는 모델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근거리 상권을 공략하는 슈퍼는 SSM이 떠오르던 2000년대 초반 수를 급격하게 불린 여파로 여러 점포가 가까이 붙어 있는 경우가 있지요. 이중 덜 효율적인 점포를 골라내 다르게 쓰겠다는 겁니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뼈를 깎는 점포 구조조정을 진행했습니다. 롯데마트만 12개 점포를 닫았고, 롯데슈퍼는 68곳을 폐점했지요. 반면 코로나19로 창고형 할인점이 부상하자 사실상 철수 수순을 밟던 빅마켓은 다시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2개뿐인 매장을 2030년까지 20개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지요. 부진한 점포는 과감하게 줄이거나 용도를 바꾸고, 실적이 나오는 점포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선택과 집중’에 돌입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가 물류거점화한 점포들은 눈에 띄는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말 스마트 스토어를 구축하고 ‘주문 2시간 내 배송’을 도입한 롯데마트 중계점과 광교점은 온라인 주문 건수가 급증했습니다. 2시간 배송 시행 1년인 지난 5월 중계점의 하루 평균 온라인 주문 건수는 1126건으로 시행 전인 2019년(339건)보다 233% 증가했지요. 광교점도 같은 기간 하루 평균 온라인 주문 건수가 785건으로 2019년(105건)의 7배를 넘었습니다. 롯데는 스마트 스토어 수를 현재 4개에서 연내 8개까지, 세미다크 스토어 수는 13개에서 18개까지 늘릴 예정입니다.
신선식품 배송의 경우 오프라인 물류기지가 탄탄하게 구축되면 쿠팡처럼 대형 물류센터를 지역마다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 롯데쇼핑의 생각입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국내에 대형 물류센터를 세우기 적합한 땅을 찾기도 어렵고, 물류센터에 여러 설비를 구축하는 데 수천억원의 비용이 든다”며 “콜드체인 시설이 이미 갖춰진 점포들의 비효율적인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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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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