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주려면 복지예산 줄여야…빈곤층 살림만 더 악화시킬 것"

입력 2021-10-12 17:16   수정 2021-10-13 01:58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려다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복지예산을 없앨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 도입이 가난한 사람들의 살림을 더 악화시킬 겁니다.”(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무차별적으로 소액을 지급하는 재난지원금과 상생소비지원금(카드 캐시백)의 효과가 얼마나 클지 의문입니다.”(고영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제40회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한 장용성 교수와 ‘제10회 다산 젊은 경제학자상’을 받은 고영우 교수는 12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시상식 후 인터뷰에서 최근의 경제정책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책 방향에 우려를 나타냈다. 다산경제학상과 다산 젊은 경제학자상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을 기리고 경제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제정된 국내 최고 권위의 경제학상이다.
“백신 실패…재정건전성 우려”
두 경제학자는 재난지원금을 비롯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적잖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장 교수는 “정부가 방역 규제에만 신경 쓴 탓에 백신을 빨리 확보하지 못한 것은 실책이었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급한 불’을 끄려고 재정을 너무 당겨쓴 탓에 재정건전성 우려가 커진 상황”이라며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소액을 지원하는 재난지원금은 효과는 크지 않고 상당한 행정비용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치솟는 집값과 팍팍한 일자리 상황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장 교수는 “급등한 집값을 반영하면 일부 사람들에게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주택 매매가격 변동폭이 물가에 반영되지 않아 상승률이 2%대로 나타날 뿐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제학계와 한국은행 일각에선 자가주거비(자기 집에 임대를 산다고 가정했을 때의 비용)를 물가에 반영해야 제대로 된 물가상승률을 측정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장 교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표 공약으로 내놓은 기본소득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만 25세 이상 국민에게 연간 360만원(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려면 연간 145조원이 필요하다”며 “이 재원을 마련하려면 세금을 더 걷거나 복지예산을 상당폭 깎아야 하는 만큼 소득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 경제활동을 대상으로 세금을 걷어야 할 수도 있고 그만큼 자원배분이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지난해 말 ‘기본소득 도입의 경제적 효과 분석’ 논문을 통해 기본소득의 부작용을 다각도로 지적했다. 논문은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해 소득세율을 올릴 경우 한국 경제의 총생산이 18.5% 줄어들고 노동력과 총자본은 각각 16.3%, 22.2%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연공서열제 폐지해 생산성 높여야”
고 교수는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입시제도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해 국내외에서 호평받았다. 고 교수는 “한국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비판이 많다”며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외국 대학과 한국 학교들을 비교하면 재정 여건과 연구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대학 등록금을 장기간 동결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상당한 사교육비를 쓰면서도 정작 대학에 들어가선 투자를 덜하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장 교수는 우리 경제의 최대 과제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생산성이 높은 것은 학연·혈연·지연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일을 배분하고 중요한 자리에 배치한 결과”라며 “미국 리치먼드연방은행은 상당히 젊은 30대 조사국장을 임명하는 등 일을 잘하면 나이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공서열제부터 폐지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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