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터쇼 ‘IAA 모빌리티 2021’의 현대모비스 부스. 메르세데스벤츠, BMW처럼 유명한 완성차 브랜드의 부스가 아님에도 많은 사람이 몰렸다. 전시물을 보고 우연히 들른 방문객도 있었지만, 현대모비스 관계자들과 대화하기 위해 부스를 찾은 완성차업체 사람도 적지 않았다. 조성환 현대모비스 사장은 부스를 찾는 이들과의 비즈니스 미팅을 이어갔다. 한 유럽계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거래를 검토 중이어서 기술력 확인을 위해 부스를 찾았다”며 “지난 몇 년 동안 글로벌 자동차 부품시장에서 현대모비스의 존재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직후 임원들에게 “우리도 글로벌 선두 부품업체들처럼 독립된 부품회사로서의 역량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모비스는 2015년까지는 현대차와 기아 중심으로 부품을 공급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상황이 달라졌다. 현대차그룹의 연간 생산량은 800만 대 수준에서 700만 대 수준으로 줄었고, 현대차와 기아가 글로벌 부품회사 제품을 쓰는 비중도 늘고 있다. 조 사장의 취임 일성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부터 수주를 따내지 못하면 현대모비스의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의미였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 현대모비스의 기술을 선보이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IAA 모빌리티쇼에 처음으로 참가한 이유다. 현대모비스는 지금까지 프랑크푸르트모터쇼(IAA 모빌리티쇼의 전신)를 비롯한 글로벌 모터쇼에 참여한 적이 없다. 성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유럽과 미국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수주하는 사례가 최근 늘고 있다. 신생 전기차업체들이 먼저 찾아와 부품을 공급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조 사장은 더 큰 목표를 갖고 있다. 핵심부품 매출 비중의 40%는 해외 업체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10% 수준이다. 현대모비스는 목표 달성을 위해 연구개발(R&D) 직접투자를 현재 1조원 수준에서 2025년 2조원 육박하는 규모로 늘린다. 같은 기간 전체 연구개발비 중 선행 기술 개발비의 비중도 14%에서 30%로 확대하기로 했다.
분위기 일신이 급선무다. 특히 ‘좋은 게 좋은 거다’ ‘현대차·기아만 잘 잡으면 문제없다’ 등과 같은 마인드를 바꾸고, 사기 진작에 나서면서 실질적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전언이다. 회사 관계자는 “조직에 긴장을 불어넣는 동시에 자신감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누구보다 내연기관에 애착이 강한 사람이다. 서울대에 입학할 때부터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딸 때까지 내연기관 엔진과 연소공학을 공부했다. 1994년 입사한 후에도 15년 이상 내연기관 R&D를 전담했다. 지금도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내연기관차 특유의 감성이 좋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전기차 전환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조 사장은 오래전부터 친한 후배들에게 “지금 위치 말고 다음번에 무엇을 맡을 것인지 예상해보고, 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룹 내 소프트웨어와 전자제어 등을 담당하는 옛 현대오트론의 부사장을 맡은 경험도 그의 생각과 시야를 넓힌 계기였다. 조 사장은 “평생 엔진과 기계만 들여다보다가 생전 처음 보는 분야를 맡아 보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이미 변화는 시작됐고, 변화를 선도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조 사장은 당시를 “혹독한 훈련을 받은 시절”이라고 표현한다. 법인장을 맡자마자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의 연비가 과대포장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연비 사태’가 터졌다. 법률 문제와 미국 정부와의 협상 등 예상하지 못한 업무까지 맡아야 했다. 그는 이후에도 연구개발본부 기획조정실장, 현대오트론 대표이사, 연구개발본부 부본부장 등을 거치며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키웠다.
현대오트론 대표를 맡은 후 그의 화두 중 하나는 ‘좋은 CEO’였다. 몇 년의 고민 끝에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조 사장은 CEO를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CEO 업무를 잘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도 세웠다. 그가 세운 원칙은 △최대한 현안에 대해 많이 알 것 △각 안건을 가장 잘 아는 실무자 의견을 들을 것 △반드시 반대하는 입장에서 질문해볼 것 △결정의 방향보다 시점을 중요하게 여길 것 등이다. 조 사장은 회의 때마다 “왜 반대의견이 없냐”고 임원들에게 되묻고, 아직도 잘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실무자에게 직접 전화해 물어보고 있다.
그는 최근 새로운 원칙을 하나 더 세웠다. 회사가 내세우는 비전과 실제 행동을 통일하는 것이다. CEO의 평소 발언과 목표 등이 행동과 같아야 한다는 의미다. 조 사장은 “말로는 미래를 바라보자고 해놓고, 막상 투자의 순간이 오면 ‘수익성이 안 나 안 되겠다’고 거절하면 안 된다”며 “현대모비스의 비전이 무엇인지 정하고, 이 비전에 맞는 결정을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13일 출범…자율주행산업協 초대 회장
조 사장이 국내 10개 기업 및 기관이 주도해 설립한 한국자율주행산업협회의 초대 협회장을 맡기로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13일 공식 출범하는 한국자율주행산업협회에는 현대모비스와 현대자동차, 만도모빌리티솔루션즈, 쏘카, 카카오모빌리티, KT, 컨트롤웍스, 토르드라이브, 한국자동차연구원, 자동차안전연구원 등이 회원사로 참여한다. 국내 기업과 기관이 협력해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고, 관련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조 사장은 “자율주행 핵심기술의 국산화를 위해선 각 분야에 강점을 지닌 기업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며 “자율주행산업은 완성차, 부품 업체 말고도 정보기술(IT), 통신, 서비스 등 이종산업이 협업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도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제동, 조향 등 기존 부품에 자율주행 센서, 통합제어 기술 등을 적용해 새로운 개념의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주행하는 자동차에 필수적인 인지, 판단, 제어 등과 관련된 기술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또 자동차와 사람, 사물, 도로 인프라 등을 초고속통신망으로 연결하는 기술 등 기존 부품회사가 담당하지 않던 분야까지 개발 범위를 넓히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차 보안 및 안전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율주행 모드에서 운전대를 접어 보이지 않게 수납할 수 있는 ‘폴더블 조향 시스템’ 기술도 선보였다. 조 사장은 “경쟁사보다 더 과감하게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자할 필요가 있다”며 “현대모비스는 자율주행 부품 시장도 선도하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성환 사장은
△1961년 서울 출생
△1984년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1986년 서울대 기계공학 석사
△1993년 미국 스탠퍼드대 기계공학 박사
△2012년 현대차 북미연구소장(전무)
△2016년 현대차 연구개발기획조정실장(전무)
△2018년 현대오트론 부사장
△2019년 현대차 연구개발본부 부본부장(부사장)
△2020년 현대모비스 전장BU/R&D부문장(부사장)
△2021년 현대모비스 사장 사장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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