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백년지대계는 어디로 갔나

입력 2021-10-12 17:41   수정 2021-10-13 00:13

4년제 대학 수시모집과 수능 원서접수가 마무리되고, 수능도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맘때면 수험생과 그 학부모는 현 대입 체계의 모순과 약점에 정통하게 된다. 그러나 들끓었던 비판과 불만은 본인에게 걸린 입시가 끝나고 나면 사그라질 것이다. 수많은 전형에 대한 지식은 입시 후엔 낡을뿐더러, 비판을 하고 불만을 가진들 대입과 엮인 정책은 교육부와 ‘교육 전문가’가 결정하게 마련이고, 문제가 무르익을 때쯤이면 다음 교육과정과 대입 체계가 발표되면서 새로운 논란이 옛 문제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는데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니 쉽게 바꾸면 안 된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익숙해지기도 전에 바뀌는 교육과정이나 대입 체계가 불편한 것은, 쓰겠다는 방법이 비전에 미치지 않거나, 교육적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비전은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과 ‘학습 경험의 질 개선을 통한 행복한 학습의 구현’이다.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은 문·이과 칸막이 해소가 목표이자 방법, 행복한 학습의 구현은 과도한 학습량과 지나친 경쟁의 방지가 목적으로 꼽혔다. 그러나 시행된 방법들로는 비전이 추구되기는커녕 반대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것이 처음부터 문제제기됐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문·이과 칸막이 해소는 표면적으로는 수능 탐구영역에서 사회, 과학 구분 없이 2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것과 국어 및 수학을 문·이과 구분 없이 배우고 선택 과목을 두는 방법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주요 대학 이공계에서 탐구영역 과목을 과학 2과목으로 지정하고 수학 선택 과목도 특정하면서, 문·이과 칸막이가 선명하게 남을 뿐만 아니라 이과 학생의 운신의 폭이 커져 대입에서 문과 학생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

또한 학교에서는 과목마다 상대평가로 9등급을 매기고 수능에서는 절대평가 과목이 늘어 변별력이 약화되면서, 내신 경쟁이 학생들의 피가 마르게 증가했다. 그러는 중에 정치적인 사건으로 느닷없이 정시모집 비중이 늘어나자 수능에서 상대평가로 남아있는 국어, 수학의 중요성이 불균등하게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논의되고 있다.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 교육 구현과 미래 역량을 갖춘 자기주도적 혁신 인재 양성’이 비전이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2025년부터 적용될 이 교육과정은 고교학점제가 가장 중요한 변화다. 학생이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192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제도다. 과목이 비교적 주어진 대로 진행되는 1학년은 상대평가지만, 과목이 학생마다 선택되는 2~3학년은 절대평가로 바뀐다. ‘행복한 학습 구현’에 실패한 것이 내신 과목별 상대평가 때문이었다고 인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바뀐다고 ‘포용 교육 구현’이 될까? 이미 사회과 과목을 9과목에서 4과목으로 축소하라는 국가교육과정 개정추진위원회의 권고로 포용이 위태롭게 됐다. 게다가 학교 내 경쟁이 지금보다 약화되면 대입을 결정하는 변별의 축이 내신에서 수능 등으로 바뀔 수 있다. 교육부는 대입 개편안을 2024년에 발표할 예정이다. 결국 교육과정의 성공 여부는 이 개편안에 달렸다.

정부의 교육 비전이 현실과 겉도는 근본적인 원인은 변별을 외면하려는 데 있다. 수능에서 절대평가를 늘려온 것이나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내신 절대평가를 늘리는 것이나 학생이 성적에 따라 줄서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로 그 어느 때보다 고등 교육의 열매는 커졌고, 모두가 바라는 자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희소하다.

줄을 여럿을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만 줄 자체를 부정해 봐야 효과도 없고 비효율만 커질 뿐이다. 어차피 학령인구가 감소해 저절로 줄이 짧아질 텐데, 차라리 덜 피곤하게 줄 설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미래 역량을 갖출 에너지를 축적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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