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이 올가을 ‘힐링의 섬’으로 관광객을 초대한다. 섬 전 지역에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흩어져 있는 기점·소악도, ‘퍼플섬’으로 알려진 반월·박지도, 지난 6월 4㎞ 길이의 팽나무길 공사를 마친 도초도는 가을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여행지다.
대기점도 선작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얀 베드로의 집이 관광객을 반긴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건물 하나를 뚝 떼어다놓은 듯한 순백의 베드로 예배당은 파란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존재감을 뿜어낸다. 이곳부터 12㎞에 이르는 순례길이 시작된다. 안드레아의 집, 야보고의 집, 요한의 집을 거쳐 12번째 가롯 유다의 집까지 방문하면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 소악도까지의 순례길이 완성된다. 세 섬은 바다 사이 노둣길로 이어져 있다.
신안군은 기점·소악도가 2017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지정되자 순례길 사업을 본격화했다. 12㎞의 순례길을 따라 걸으며 각기 다른 형식으로 지어진 12개의 작은 예배당을 찾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축소판이라 불릴 만하다. 섬 사이 노둣길을 건너 다른 섬으로 이동하는 이곳만의 순례 코스도 섬 여행의 즐거움을 준다.
12개 예배당은 예수의 12사도를 상징한다. 예배당 프로젝트에는 11명의 공공조각·설치미술 작가가 참여했다. 강영민·김강·김윤환·박영균·손민아·이원석(한국), 장미셸 후비오·브루노 프루네(프랑스), 파코(프랑스·스페인), 아르민딕스(포르투갈), 에스피 38(독일) 등이다. 해외 작가들은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재료를 자신의 나라에서 직접 가져왔다.
건축미술 형태의 예배당들은 노둣길에, 숲 속에, 언덕에,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몽생미셸의 교회를 닮은 예배당도, 러시아 정교회의 둥근 지붕을 차용한 예배당도 있다. 예배당은 제각각 독특하고 주제가 다르지만 모두 6.6㎡가 채 안 되는 크기로 지어졌다. 호수 가운데 세워진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예배당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수지의 물을 사흘 동안 퍼내고 8개월이나 걸려 만들었다. 저녁 무렵 스테인드글라스에 반사되는 빛이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신안군 관계자는 “12개 예배당 가운데 3개 예배당이 마지막 공사를 하고 있다”며 “이달 말까지는 순례길에 있는 모든 예배당이 완성된다”고 소개했다.
퍼플섬은 신안 안좌면 반월·박지도의 보행교를 정비하고 보라색으로 칠하면서 탄생했다. 신안군은 주변 건물의 지붕과 창틀, 주민들이 사용하는 식기까지 모두 보라색으로 바꿨다. 섬 곳곳에 라벤더, 라일락, 접시꽃, 버들마편초, 아스타 등 보라색 꽃이 피는 수목을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온통 보라색 꽃이 피는 풍경을 연출했다. 반월·박지도를 찾는 여행객은 보라색 소품을 꼭 챙겨온다. 보라색 옷을 입거나 액세서리를 착용하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국공원에서 팽나무길 쪽으로 걷다 보면 오른쪽엔 수로가, 왼쪽엔 논이 있는데 섬에 왔다기보단 고향의 가을 산책길을 걷는 느낌이 난다. 신안군은 ‘환상의 정원’ 산책로를 조성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전국 곳곳의 야생에서 자란 수형 좋은 팽나무만을 기증받아 도초도까지 실어온 뒤 정성껏 심고 가꿨다. 수국공원에서 차로 10분 거리엔 영화 ‘자산어보’ 촬영지가 있다. 초가집 마루 사이로 바다가 펼쳐지는 장면이 압도적이어서 도초도를 찾는 이라면 꼭 들르는 여행 장소가 됐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환상의 정원이 ‘코로나 블루’를 극복할 치유 산책길이 되길 바란다”며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섬의 자연을 느끼고 사색할 수 있도록 잘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신안=임동률 기자 exi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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