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코로나19 방역에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 변이 유행을 확인하는 속도다. 메르스가 유행했을 땐 국내 유행 중인 메르스바이러스의 변이 여부를 파악하는 데 1주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셀레믹스는 질병관리청에 코로나19 전장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는 진단 기업이다. 이 회사의 검사 서비스를 적용한 결과 국내에선 하루 안에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어떤 유전자 변이가 나타났는지 검사 결과를 받아보는 게 가능해졌다.
이용훈 셀레믹스 대표는 “지난 7월엔 중국 1위 유전체 분석서비스 기업인 칭커와 공급계약을 맺은 데 이어 또 다른 중국 유전체분석 기업과 또 다른 계약을 체결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방식 대비 비용 17분의 1 수준 절감
셀레믹스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유전자 분석 전문 기업 간 거래(B2B) 기업이다. 직접 유전자 분석을 하는 서비스를 판매하기 보다는 이러한 서비스를 하는 업체들에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에 기반한 DNA 분석 패널을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는 NGS 원천기술인 ‘엠씩(MSSIC)’ 기술로 미국 일루미나, 써모피셔 등 다른 유전체 분석 B2B 기업들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 NGS는 검사할 DNA를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조갠 뒤 각 조각의 염기서열 구조를 파악해 변이 여부 등의 유전자 정보를 확인하는 기법이다. 통상 검체 속 DNA 조각을 포집할 수 있는 대장균을 이용한다. 저마다 다른 DNA 조각들을 머금고 있는 대장균들을 배양시킨 뒤 이들 대장균에서 DNA 조각만 따로 분리해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기존엔 일일이 수작업으로 대장균에서 DNA 조각을 분리하다보니 검사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셀레믹스는 물을 잘 빨아들이는 미세돌기 2만여개를 심어놓은 특수기판을 이용한다. 기둥 각각마다 대장균이 한 마리씩 달라붙으면서 기둥마다 각각 다른 DNA 조각을 포집한 대장균이 달라붙게 된다. 이후 배양 과정을 거치게 되면 기둥별로 다른 DNA 조각을 머금은 대장균들이 군집을 이루게 된다. 이후 레이저를 쏴 DNA 조각만 발라내 미세돌기가 있는 기판 밑으로 떨어뜨린다. 손으로 대장균들을 일일이 나누는 과정이 사라진 것이다.
이 대표는 “손으로는 DNA 조각을 하루에 100개 정도 분리할 수 있던 것을 하루 2만개까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며 “기존 방식 대비 최대 17분의 1 수준으로 비용을 낮추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용 NGS 서비스 이달 출시
NGS 기술은 DNA를 조각 내 검사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DNA의 전체 염기서열 구조를 검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체 염기서열 구조를 분석하는 기법이 코로나19 신종 변이 등을 파악할 때 쓰는 전장 유전체 분석법이다.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 부위들만 표적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이 외에 특정 유전자 표적들만 검사하도록 하면 검사 비용과 시간을 줄이면서도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를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다. 질병 유발 유전자가 다양한 암을 조기진단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셀레믹스는 해외 경쟁사보다 기민하게 바이오 기업들의 수요에 대응하는 쪽으로 사업 전략을 펼치고 있다. NGS 분석법은 특정 질환의 바이오마커를 발굴하는 데도 쓰인다. 진단 기업이 아닌 신약 개발사들도 연구실에서 특정 유전자 표적에 맞춤형으로 개발된 NGS 진단 패널이 필요하다.
셀레믹스는 신약 개발사를 위한 동반진단 서비스를 이달 출시했다. 표적 항암제 개발에 쓰이는 수천개 표적 유전자의 돌연변이 유무를 한 번에 검사할 수 있도록 해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임상 과정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대표는 “셀레믹스는 해외 경쟁사보다 적은 양의 주문에도 맞춤형 NGS 패널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며 “패널 공급에 3개월 이상 걸렸던 시간도 2개월 이하로 줄여 연구·개발 단위에서의 NGS 수요에 특화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어 돼지 감염병 진단 시장 공략
셀레믹스는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NGS 기반 코로나19 진단키트인 ‘셀레믹스 코비드-19 NGS 어세이’의 긴급사용승인(EUA)을 신청했다. 이 키트를 이용하면 전장 유전체 분석으로 신종 변이를 포함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NGS 진단키트로 FDA에서 EUA를 받은 기업은 일루미나와 미국 트위스트바이오사이언스 등 2곳이 유일하다.
셀레믹스는 인도에서 이미 NGS를 이용해 호흡기 바이러스 39종을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는 진단키트를 납품하고 있다. 이 대표는 “통상 바이러스 5종 정도를 보는 PCR 대비 검사 표적의 수가 많다”며 “같은 수의 바이러스 종류를 검사하는 데엔 PCR 보다 NGS가 더 적은 양의 검체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변이 파악이 절실한 동물 감염병 쪽에서도 후속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셀레믹스가 주목하는 질환은 돼지 생식기·호흡기 증후군(PRRS)이다. 미국 양돈업계에선 아프리카돼지열병(ASF)보다도 방역에 신경 쓰고 있는 질환이다. 셀레믹스는 미국 현지 대학 몇 곳과 PRRS용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내년 상용화한 뒤 방역을 담당하는 국가 연구기관 위주로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셀레믹스는 암 조기진단 영역에서도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는 국내 유전체분석 기업인 아이엠비디엑스에 암 조기진단용 검사패널을 공급할 계획이다. 아이엠비디엑스는 액체생검을 활용한 암 진단 데이터를 연내 1만 건 확보한 뒤 2023년 암 조기진단 서비스를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 유전체분석 공급 계약 이어질 것”
셀레믹스가 중국 유전체분석 시장도 눈여겨보고 있다. 셀레믹스의 엠씩 기술이 가진 가격 쟁력을 특히 잘 활용할 수 있는 시장이어서다. 이 회사는 지난 7월 중국 칭커와 45억원 규모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공급 서비스는 DNA의 형태나 길이의 제약 없이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기술인 ‘비티식(BTseq)’이다. 칭커는 연간 1500만건에 달하는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하고 있는 중국 1위 규모 유전체 분석 기업이다.
셀레믹스는 중국에서 추가 계약도 기대하고 있다. 또 다른 중국 유전체분석 기업과 비슷한 규모의 서비스 공급 계약을 논의 중인 만큼 연내 또 다른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을 거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중국 시장은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해외 기업들이 진출하기가 특히 어려운 시장이다”며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물류 경색이 회복되는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유전체분석 서비스로 해외에서 시장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셀레믹스는 비티식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을 비롯해, 아메리카 등에서도 공급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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