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의 공식 석상에 소위 ‘최고존엄’이라 부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얼굴을 그린 티셔츠가 등장했다. 북한 정권의 공식석상에 김정은의 얼굴이 그려진 의류가 등장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2일 보도한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 영상에 등장한 개막식에서 북한 애국가 연주를 지휘한 지휘자는 이날 김정은의 얼굴이 흑백으로 그려진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통상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기며 함부로 접거나 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 정권은 김정은의 얼굴이 담긴 신문과 사진, 교과서, 책 등을 모두 ‘1호 출판물’로 지정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챙기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북한 매체들은 개인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최고지도자의 초상화를 보호해야 한다는 걸 주입하며 이런 일들을 미담으로 대대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북한 매체는 앞서 2003년 한 9살 소녀가 집에 불이 나자 불 속에 뛰어들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구하려다가 숨진 사건을 미담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의 얼굴을 ‘존안’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013년 국내외에서 김정은 성형 의혹이 불거지자 “백두산위인의 태양의 존안에 얼마나 위압되고 얼이 나갔으면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수술 의혹설까지 꾸며냈겠는가”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김정은 티셔츠’의 등장은 일부 서구식 방식을 따라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관영매체들을 통해 인공기와 한반도기를 그린 티셔츠를 생산하고 주민들이 이를 입고 다니는 사진을 홍보한 바 있다. 북한에서 국기를 의류에 그려넣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라 큰 주목을 끌었지만 이날은 여기서 더 나아가 김정은의 얼굴까지 티셔츠 디자인이 된 것이다.
체 게바라가 전 세계에서 티셔츠의 주인공으로 주목받는다는 점도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쿠바 혁명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는 북한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다만 의류는 세탁 등의 과정에서 훼손이 불가피해 주민들 사이에서 이같은 티셔츠가 널리 확산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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