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미치광이’로 불린 화가가 1888년 동생에게 보낸 편지다. 2년 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 평생 인정받지 못한 화가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르고,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던 그는 1890년 권총 자살로 37세의 생을 마감한다. 그는 생전 800여 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했다. 하지만 사후 그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된다.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지금 집값이 고점이라고 거듭 경고하고 있다. 금리 인상, 대출 규제 등으로 이제 거품이 꺼져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3기 신도시 등의 사전청약 물량은 대폭 늘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2024년까지 공급할 사전청약 물량을 애초 계획보다 10만1000가구 늘어난 16만3000가구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인천 계양 등의 사전청약에서는 고분양가 논란이 불거졌다. 분양가가 그리 싸지 않다는 말이다. 사전청약 후 입주 때까지 최소 4~5년이 걸린다. 즉 홍 부총리 주장대로 지금 집값이 꼭지라면, 사전청약에 당첨되면 고점에 물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최근 14만 가구가 들어설 경기 의왕·군포·안산 등 3차 신규 택지도 추가로 발표했다. 수도권 외곽이지만 광역급행철도(GTX)가 깔리면 서울로 출퇴근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 도심복합개발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공공 주도 재개발·재건축으로 서울 공급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투기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피스텔 난방과 도시형생활주택 면적 규제까지 풀었다. 서울시도 ‘오세훈표 재개발’을 내세워 2030년까지 연평균 약 8만 가구의 신규 주택을 짓겠다고 한다.
최근 주택 정책을 보면 당정은 내년 3월 대선 전까지는 무조건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나중에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안중에도 없다. 강남 등 수요가 많은 지역은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규제로 꽁꽁 묶어놓고, 외곽 지역에서 앞뒤 안 가리고 공급만 늘리면 어쩌자는 건가.
긴 호흡이 필요한 주택 정책을, 선거 앞두고 표심 얻는 수단 정도로 가볍게 여긴 대가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GTX발 호재로 집값이 급등한 수도권 외곽지역의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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