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의 편집자이자 저명한 경영저술가인 에이드리언 울드리지는 《재능 귀족: 능력주의는 어떻게 근대 세계를 만들었나(The Aristocracy of Talent: How Meritocracy Made the Modern World)》에서 이 모든 비판에 내재한 무지와 불합리성, 그리고 능력주의가 지닌 복잡다단한 속성을 역사와 현실의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막대한 사교육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판자들은 부유층만이 사교육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며, 빈곤층은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조차 이 경쟁에서 탈락함으로서 사회적 계층이동이 단절되고 부는 양극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원흉이 능력주의라고 지목한다.
능력주의는 18세기 후반 서구에서 영국의 민주주의 혁명, 프랑스 혁명 그리고 미국 혁명 시기를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와 하층민을 해방시키는 수단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혁명적 사상이었다. 그 이전에는 공직을 비롯한 사회의 상류 지위는 대개 가족세습, 매관매직, 연고와 친분을 통해서만 이뤄졌다. 족벌주의와 정실주의 사회에서 재능있는 하층민이 개인의 능력으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길은 거의 막혀 있었다.
그러다가 출신 가문이나 유력자 연고 대신에 시험을 통해 공직자를 선발하는 관행이 등장하면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다. 여성과 유색인종 차별도 뒤늦게 해소되고,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근대 자본주 기업이 인력 채용 과정에서 능력주의를 천명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공정하게 마련된 기회가 오늘날에는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명문대학 졸업이 취업에 유리하다면, 이는 이미 천문학적 사교육비 지원이 가능한 부자에게 유리한 게임이 돼버렸다는 뜻이다. 나아가 명문대 졸업 후 성공한 엘리트들은 세습귀족화돼 현대판 정실주의가 되살아나고 계급 폐쇄성은 고착돼가기만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능력주의가 기준으로 삼는 재능이 사실은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그 가문과 배경의 재능이므로 철폐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입 수능시험, 예컨대 미국식 SAT조차 능력주의의 산물이란 비난을 들었다. 전인교육과 다양한 인성을 고려한 선발이 필요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의도와 달랐다. 사람을 점수로 서열화하지 말고 전인교육을 시행하자는 주장은 오히려 온갖 종류의 스펙쌓기를 지원할 수 있는 부유한 학부모에게만 도움을 줬거나, 기껏 쉽고 즐거운 배움을 강조하면서 지력 퇴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 방향에 맞춰 엄격한 학생 선발과 가혹한 시험제도를 운영한 곳이야말로 수많은 나라에서 하층민을 사회적 성공에 이르도록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반면에 허울 좋은 무시험이나 추천 전형에 의존한 교육기관은 사회적 이동성 증대에 기여하지 못했다.
번영을 원한다면 오직 능력주의다. 정치권이 정실주의로 치우친 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부패와 저성장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여러 실증 연구에서도 밝혀졌다. 반면에 능력주의 선발 및 훈련에 철저한 기업과 스포츠 경기는 줄곧 위대한 성과를 낳았다. 오히려 능력주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강화해야 할 원리다. 능력 경쟁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사회 정의, 민주, 평등이라는 꿀 발린 말을 한다 해도 본심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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