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19일 06:0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돈을 아껴가며 다양한 위스키를 맛보러 다닐 정도로 술 '덕후'였던 대학생은 고민에 빠졌다. 소주를 들이부어가며 만취하기 십상이었던 술자리 문화를 바꾸고 싶었다. 한 잔을 마시더라도 맛있는 술과 함께 즐거운 기억을 남기길 원했다. 그래서 이 청년은 회사를 차렸다. 위스키나 사케, 와인 등을 집 근처 식당으로 주문한 뒤 '픽업'할 수 있게 하는 앱을 내놨다. 애주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대박'을 쳤다. 수십억원의 벤처투자금도 유치했다.
김민욱 데일리샷 대표(사진) 얘기다. 김 대표는 17일 기자와 만나 "주류 '수퍼 앱'을 넘어 사람들의 저녁을 책임지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데일리샷은 창업 4년차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술 픽업 서비스를 내놨다. 소비자가 앱에서 집 근처 제휴 식당을 선택한 뒤 원하는 술을 주문하고 2~3일 뒤 식당에 들러 수령하는 구조다. 출시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누적 앱 다운로드 수가 20만 건을 넘었다. 회사와 제휴를 맺은 매장은 754곳, 판매하는 술은 533종에 달한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로 혼술족이 늘어나면서 단순히 '깡소주'보다 맛있는 술을 찾는 경향이 생긴 덕에 픽업 서비스의 성장세도 가파르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직접 문앞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건 법적인 규제 때문이다. 현행법상 국내에서는 주류의 온라인 판매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지난해 4월 법이 일부 바뀌면서 온라인에서 주문하고 오프라인에서 받는 '스마트 오더' 형태의 판매는 가능해졌다. 덕분에 픽업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픽업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주력 사업모델은 '웰컴드링크' 서비스였다. 이용자가 매월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제휴 매장에서 한 잔의 술을 제공받는 일종의 멤버십 형태다. 사업 초기 제휴 매장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마다 술집과 카페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닥치면서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술집 테이블을 닦기도 하고 커피 배달을 나가기도 하면서 사장님들을 고객으로 유치하려 노력했다"며 "이 때 쌓아둔 매장 네트워크 덕에 픽업 서비스도 순조롭게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앱 안에서 술에 대한 '스토리'도 읽을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말이다. 직원들이 직접 시음을 하며 단순 알코올 도수 뿐만 아니라 맛이나 유래, 술에 얽힌 역사적 사실도 담아냈다. 그는 "예를 들면 '커티 샥'이라는 위스키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 등장하는데, 상품 설명에 이런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넣어 접근성을 높였다"며 "단순히 술을 사는 것 이상으로 다채로운 경험을 소비자에게 선사하고 싶었다"고 했다.
최근에는 30억원 규모 시리즈 A 투자 라운드도 마무리했다. 위벤처스,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 스프링캠프 등 벤처캐피털(VC)이 투자에 참여했다. 투자를 주도한 윤서연 위벤처스 심사역은 "정체됐던 주류 시장에 혁신을 가져온 데다가 끈끈한 제휴 매장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어 '카피캣'들이 따라올 수 없는 회사"라고 평가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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