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욱하고 치밀어 오른다. 화, 분노, 성남, 분개가…. 하지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한 후유증은 크다. 가족과 지인 간의 관계엔 치명적인 균열이 생긴다. 한 번 난 상처는 웬만해선 아물지 않는다. 툭하면 버럭하는 부모의 자식들 뇌리엔 부모가 역정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이 깊게 새겨진다. 수십 년이 지나도 자주 화를 낸 부모가 여전히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제3자의 경우라면 더 말할 것이 없다.
《분노의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감정이지만 흔하게 발생하고, 가까운 이들에게 치명적인 상흔을 남기는 ‘분노’를 과학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분노 전문 심리학자인 저자는 어린 시절 웨이터의 작은 실수에 언성을 높이고, 운전 중 다른 차가 끼어들 때마다 경적을 울리며 화를 조절하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분노란 감정에 관심을 두게 됐다.
분노만큼 모든 이로부터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감정은 없다. 분노 때문에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다. 화가 나면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행동으로 인간관계를 망친다. 분노한 사람은 주변인에게 거리감과 짜증, 그리고 공포를 안긴다.
분노의 흔한 동반자는 폭력이다. 적대행위, 공격성과 어울리는 경우도 흔하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오르고, 호흡수가 증가하며 눈동자가 팽창하는 분노의 신체적 증상은 전장에 나선 군인의 신체 반응과 동일하다.
감정으로서 분노는 사회적 감정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슬픔, 공포, 즐거움과 달리 분노는 혼자 있거나 남과 상호작용하지 않을 때 느낄 일이 거의 없다. 분노가 분출하는 경우의 80% 이상이 사회적 상황의 결과다. 분노는 결코 홀로 일어나지 않는다.
때론 분노의 원인이 과학으로 가려진다. 뇌수막염이나 각종 사고로 뇌의 편도체나 전전두엽 피질이 손상되면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사고 전 온화한 성격에서 충동적이고, 상스럽고, 불손하며, 참을성 없고, 고집 세고, 변덕스러운 사람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의학적 특수 사례가 아니어도 분노가 폭발하는 과정은 과학적으로 복기할 수 있다. 분노를 촉발하는 요인이 있고, 분노가 발생하기 전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다.
분노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요인은 대부분 외부 상황, 즉 ‘남 탓’이다. 갈 길이 바쁠 때마다 빨간 신호등이 발길을 붙잡고, 배우자는 먹은 음식을 제때 치우지 않고 식탁 위에 널브려 놔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부 정책과 자동차 키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도 부아를 치밀게 한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라고 무조건 분노가 폭발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공정성이 결여돼 있다고 느끼거나 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추구하던 목표가 방해받을 때 분노가 폭발한다. 여기에 스트레스, 피로, 공복, 더위, 추위 같은 주위 환경이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다.
특히 분노는 남들의 행동을 두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에게 흔히 일어난다. 자신에겐 당연한 일이고 불문율이자 상식이지만, 남들에겐 그렇지 않다는 점을 모르는 이들에게 수시로 분노가 찾아온다. 그들은 그저 “그걸 알아줬으면 해”라고 무작정 요구하지만 막상 자신의 감정 표출로 주변에 끼친 두려움과 불편함은 보지 못한다.
드물지만 분노가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도 없지는 않다. 분노는 부당함을 경고하고, 삶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하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연료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중의 분노가 세상의 불의를 바로잡은 사례는 역사에 드물지 않다. 노기를 내비치면 만사 귀찮은 일, 짜증 나는 사람들이 알아서 피하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면 분노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좀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거나 “화만 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조언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별수 없으니 그저 참으라는 것도 스트레스와 서글픔만 키울 뿐이다.
일단 화가 난 이유를 파악해서 화가 증폭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알아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합리적으로 원인을 분석해야 분노를 건강하고 친사회적인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도 화를 다스리는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다만 책장을 덮고 나면 정체를 드러낸 분노가 예전처럼 버겁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