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출 기업, 국내에 법인세 수천억 더 낸다

입력 2021-10-14 17:07   수정 2021-10-15 01:18

법인세의 글로벌 최저한세(필러2) 도입으로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세금 부담이 수천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영향을 받는 기업이 최소 82개에서 최대 400여 개에 이를 전망이다. “디지털세(필러1) 및 필러2 도입에 따른 조세 수입 및 국내 기업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던 정부의 기존 입장과 상반된 분석이다.

필러1은 삼성전자와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대기업이 해당 국가에 생산·판매법인이 없더라도 매출 규모에 따라 법인세를 납부하도록 한 것이다. 필러2는 해외에서 15%보다 낮은 법인세를 내고 있는 기업이 그 차액을 본국에 납부하는 것이 골자다.
○수천억원 늘어나는 법인세 부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은 13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열리는 미국 워싱턴DC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필러2로 인해 수천억원의 세수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필러1에서 수천억원 정도 세수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필러2를 통해 전체 세수는 소폭 늘어날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필러1과 필러2는 지난 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총회에서 2023년 도입이 결정됐다. 필러2가 적용되면 헝가리에서 법인세 9%를 부담하고 있는 삼성전자 유럽 생산법인은 글로벌 최저세율로 정해진 15%와의 차이 6%포인트만큼의 법인세를 국내에 내야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 8일 OECD 논의 결과를 토대로 자체 추계했더니 한국 기업이 국내에서 수천억원의 추가 세금을 내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분석에 따르면 최소 82개에서 100여 개 기업이 필러2 도입으로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51개 대기업집단 계열사 중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법인세율이 낮은 지역에 법인을 두고 있는 곳은 473개에 달해 이 추정치는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홍 부총리는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가 법인세를 올리면서 필러2에 따른 세수 증가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 있든 최소 15%의 법인세를 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수천억원의 추가 세금 부담이 그대로 남는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처음 디지털세 등을 논의할 때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던 정부 설명과 다르다”며 “지금이라도 정부 추계 내용 등 구체적인 파급 효과를 공개하고 기업 의견을 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필러1과 관련해 국내에 세금을 내야 하는 글로벌 기업은 80여 개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국내에 내는 법인세 중 2조원 이상이 필러1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가며 단기적으로는 세수가 감소하겠지만 이들 80여 개 글로벌 기업의 법인세 납부가 차차 늘며 삼성전자 등의 세수 감소분을 메울 것이라는 게 기재부 전망이다.
○“환율 안정 조치 나설 것”
홍 부총리는 또 최근 오르고 있는 원·달러 환율(원화 가치 하락)과 관련해서는 시장 안정화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환율이 시장 수급에 의해 조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투기적 요인에 의해 급등락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며 “면밀하게 환율 동향을 관찰하고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필요하다면 정부는 안정화 조치를 언제든 준비하고 실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영업 기밀에 준하는 자료 제출을 요청받은 것과 관련해서 홍 부총리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14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을 만나 관련 문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원래 산업통상자원부와 미 상무부가 논의할 사항이지만 옐런 장관과 면담이 예정돼 있는 만큼 반도체 자료 요청 문제에 측면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귀국 직후인 오는 18일 열리는 ‘제1차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관련 대응 방안을 본격 논의할 예정이다.

노경목 기자/워싱턴=정인설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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