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1호보다 더 유명한 2호는 없지만, 국내 원전 역사에선 2호가 더 유명하다. 월성 원전 1호기다. 월성 1호기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다. 월성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경주 역사 때문이다. 경주군은 1955년 경주시와 월성군으로 행정구역이 정비되고, 월성군은 1989년엔 경주군으로 이름이 바뀐 뒤 1995년 경주시로 통합됐다. 1975년 착공 및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월성군이었기 때문에 월성 1호기가 된 것이다.
월성 1호기도 고리 1호기와 마찬가지로 가동 연장이 결정됐다. 2015년의 일이다. 가동 연장 신청은 2009년 말 이뤄졌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여파 등으로 실제 결정은 2015년에 나왔다. 기간은 2022년까지였다.
월성 1호기를 국내외 ‘화제의 원전’으로 만든 것은 문재인 정부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선언했다. 연한을 다한 세월호와 같다는 비유를 쓰면서다. 이후 ‘과속 스캔들’이 벌어졌다. 실무진이 가동을 조기중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하자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너 죽을래”라며 조기 폐쇄의 논리를 만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되나”라는 댓글을 단 이후엔 일사천리로 진행됐으며, 2018년 6월 조기 폐쇄가 확정됐다. 과속의 결과로 나온 경제성 조작과 배임 등 법 위반 혐의는 현재 사법부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문 정부 후반부 시작된 탄소중립 속도전은 월성 1호기 과속과 꽤나 유사하다. 문 정부는 탈원전에는 공을 들였지만, 탄소중립엔 큰 관심이 없었다. 더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겠다고 하는 의미의 탄소중립은 원래 유럽의 아젠다였다.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동참 의사를 밝히고 중국이 지난해 9월, 일본이 지난해 10월 26일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하자 한국 정부도 마음이 급해졌다.
한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은 지난해 10월 28일이다. 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때였다. 일본의 발표가 나오고 이틀 뒤다. 탄소중립을 이루는 시점은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2050년으로, 중국보다 10년 빨리하겠다고 밝혔다.
이후엔 급가속의 연속이었다. 국회는 탄소중립기본법을 올해 8월 통과시켰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35% 이상 줄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불과 8개월 전 감축 목표가 26.3%로 정해졌는데 이를 35%로 높인 것이다. 지난 8일엔 탄소중립위원회가 이를 더 높인 계획을 내놨다. 이번엔 40%다.
무슨 의미인지는 태양광 패널이 얼마나 깔릴지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현재 전국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은 서울 면적의 대략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2030년엔 이를 서울 면적의 1.1배로 높이겠다는 얘기다. 그래야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원전 등을 줄이는 계획이 달성된다.
탄소중립의 방향을 틀렸다고 얘기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이제 거의 없다. 산업계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속도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했을 때 산업계는 30%대 초반, 산업부는 30%대 중후반 정도를 얘기한다. 현재 기술력으론 40%가 불가능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문 정부는 욕심이 과하다. 한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정부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선 일부 유럽국가가 30년 전부터 추진했던 온실가스 감축을 단숨에 이루자는 얘기는 못 할 것 같다. 욕심을 버리면 좀 더 쉽다. 선진국 클럽 중에서 탄소중립을 천천히 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면 된다. 아직 시간은 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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