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이 처음 실시된 것은 1971년이다. 당시 신민당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김영삼·김대중·이철승 후보가 경선을 치렀다. 경선 본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최종 승리했고 김영삼 후보는 승복했다.
이후 경선 불복 논란이 인 것은 1992년 14대 대선을 앞두고서다. 당시 민주자유당(민자당) 내 민정계 실세로 꼽힌 이종찬 후보는 김영삼 후보에게 밀리자 중도 하차한 뒤 탈당했다. 이 후보는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정주영 국민당 후보를 돕는다. 이후 동교동계와 함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했다.
경선 불복의 아이콘은 이인제 전 의원이다. 그는 1997년 15대 대선 때 경기지사직을 내던지고 신한국당 대선 후보로 경선에 참여했다. 이회창 후보와 결선에서 맞붙었지만 패배한 뒤 탈당해 국민신당을 만들었다.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 이인제 후보 3자가 맞서는 구도였다. 이인제 후보의 출마로 영남표가 분산되면서 40.3%를 득표한 김 후보가 당선됐다.
이인제 전 의원은 5년 뒤 2002년 대선 때도 경선 불복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국민신당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그는 경선 초반엔 대세론에 힘입어 압승이 점쳐졌다. 하지만 ‘노풍(盧風 : 노무현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는 대선을 목전에 둔 12월 1일 민주당 탈당을 선언하고 김종필 총재가 이끌던 자민련에 입당했고 이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다.
3년 뒤 정치권은 ‘정당이 당내 경선(여론 조사 경선 포함)을 실시하는 경우 후보자로 선출되지 아니한 자는 (해당 선거의 본선)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제57조의 2항을 신설됐다. 경선에서 패배할 경우 무소속 또는 다른 정당으로 옮겨 해당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이인제 방지법’이다.
경선 불복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는 이회창 후보에 맞서 단일화를 이뤘다. 단일화 경선 여론 조사 결과 노 후보가 승리하면서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하지만 정 후보는 대선 하루 전인 12월 18일 지지 철회를 선언했다.
경선에서 중도 사퇴한 정세균 전 총리와 김두관 의원의 득표를 무효표로 하느냐 여부가 쟁점이었다. 경선에서 승리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이재명 후보 측과 당 지도부는 무효표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패배한 이낙연 전 대표 측은 ‘후보자가 사퇴하는 때’를 기준으로, 그전에 공개된 정 전 총리(2만3731표)와 김 의원(4411표)의 득표는 유효표로 처리하고 사퇴 후 얻은 표만 무효표로 간주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 전 대표 측 주장대로라면 50.29%를 얻은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은 49.32%로 과반에 미달한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엔 당헌·당규에 따라 결선 투표를 해야 한다.
이 전 대표 측은 이 지사의 구속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결선 투표를 주장했지만 당 지도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 전 대표가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승복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전 대표 지지자들이 경선 효력을 무효화하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낸데다 대장동 개발 의혹 수사 향방에 따라 갈등은 언제든지 되살아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 전 대표가 사흘 만에 승복한 데 대해서도 뒷말이 나온다. 후보 교체론에 대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전 대표 측의 한 의원은 “대장동 수사 여파로 이 지사가 상처를 입거나 지지율이 확 떨어질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경선 불복 모양새를 너무 오래 끌면 당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고 혹여 있을지 모르는 후보 교체 상황에서 이 전 대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지지자들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흘 정도 칩거하고 승복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설훈 의원은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앞서 이재명 후보의 구속 가능성을 말했는데 정정할 생각이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정정하고 싶지 않다”며 “그런 상황이 올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져 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도 캠프 해단식에서 “요즘 저건 아닌 듯싶은 일들이 벌어져 마음에 맺힌 것이 있었다”며 “다시는 안 볼 사람들처럼 모멸하고 인격을 짓밟고…”라고 했다. 송영길 대표가 이 전 대표 지지자들을 향해 “일베 수준”이라고 한 것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표는 승복했지만 경선 불복의 그림자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정치에 여전히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 것이다.
이재명 후보의 앞길도 순탄하지만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대장동 게이트와 관련해 “1원도 안 받았다”고 해서 화살을 피하기 어렵다. 우선 그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대장동 개발 인허가가 이뤄졌다. 개발 계획은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짜지만 인허가권은 성남시에 있다. 의혹의 핵심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구속 영장엔 배임 혐의가 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실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간 초과 이익 환수’조항을 뺀 것도 의문이다. 지분 50%를 넘는 성남도시개발공사는 대장동 개발에서 최근 3년간 1830억원의 배당금을 받은데 비해 지분 7%에 못 미치는 화천대유와 천하동인에는 배당금 4040억원이 돌아가게 되도록 한데 대해 인허가권자인 성남시는 대체 뭘 했느냐는 의문이 적지 않다.
여론 조사도 호의적이지 않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 의뢰로 지난 10월 9~10일 성인 10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신뢰 수준 95%, 표본 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대장동 사업에 ‘이 지사의 책임이 크다’는 응답이 56.5%인 반면 ‘국민의힘 책임이 크다’는 응답은 34.2%에 그쳤다.
특히 3차 경선 때 선거인단(국민·일반당원) 투표에서 28.30%밖에 얻지 못한 데 대해 이재명 후보 캠프는 충격을 받았다. 일각에선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역선택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부 역선택의 영향은 있겠지만 1, 2차 경선 때에 비해 절반으로 뚝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하고 있다. 역선택보다는 대장동 게이트로 인한 민심과 당심이 이반된 결과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대장동 게이트가 대선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이 지사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지율이 박스권에서 맴도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대장동 게이트 이후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이 전 대표의 지지자 이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리얼미터의 조사(11~12일)에서 이재명 후보는 전체에서 32.4%의 지지율을 얻었지만, 민주당 경선에서 이 전 대표를 지지한 층에선 지지율이 13.3%에 그쳤다. 이 전 대표 지지자 상당수가 다른 후보 지지로 옮긴 것이다.
중도층으로 지지 확산 전략도 차질을 빚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20대와 여성층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정치 평론가인 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는 이 지사가 맞닥뜨린 난관으로 △형수 욕설 논란과 배우 김부선 씨와 관련된 의혹 등 도적성 문제 △문재인 정부와의 정책적 차별화 △과격한 이미지로 인한 안정적 국정 운영 의구심 △당내 분열 등을 꼽았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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