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Not that I loved Caesar less, but that I loved Rome more.)"(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3막 2장 중에서)
중장년층 이상 세대가 학창 시절 영어 참고서에 자주 봤을 문장의 출처는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사극 '줄리어스 시저'입니다. 각종 희·비극을 두루 썼던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역사 뿐 아니라 옛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을 다수 작성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줄리어스 시저'는 중후함과 비장함, 충성과 음모, 정치적 대결 등 일반적으로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특징을 많이 담은 작품인데요.
일본에서 최근 이 작품을 여성 배우들로만 연기하는 실험이 진행됐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주요 선진국 중에서 여성의 권리가 가장 발전하지 못한 사회로 꼽히는 일본에서 파격적인 연극 실험이 이뤄졌고, 원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17세기 중반 이전만 하더라도 여성 배역까지도 남자 배우들이 맡았던 전례를 고려하면 여러모로 전복이 이뤄졌다는 평가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여성 배우들만으로 연기하는 '줄리어스 시저' 무대가 도쿄 시부야에 있는 '파르코(PARCO)극장'에서 막을 열었습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남성인 작품을 여성들만이 연기하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입니다.
출연진은 모두 여성이고, 남장을 하지 않고 여성의 외모를 그대로 드러낸 채 연기하지만 원작의 분위기를 바꾼 것은 없다고 합니다.
여성 배우들도 '나'라는 대사를 말할 때 주로 일본 남성들이 사용하는, 약간 거친 분위기를 풍기는 '오레(俺·おれ)'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작품의 등장인물이 모두 여자인 것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작품의 이면을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요. 전형적인 남성 사회를 그린 연극을 모두 여성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을 다시 보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사회 활동이 뒤처진 일본 사회에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이 정치극을 연기하는 것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자체가 일본 사회에 만연한 남녀 불평등을 드러내는 것이란 설명입니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등장인물의 성별을 뒤바꿔 연기한다든지, 여성 출연자만으로 연기하는 셰익스피어 공연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늘어난 현대 사회의 특성이 반영됐을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여성 배역의 역할은 적은 데 반해 배우 시장에서 여성 배우의 '공급'은 많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입니다.
여성 배우가 분장한 브루투스가 시저를 칼로 찌르고,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시저가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치는 것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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