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출판용 주요 용지 가격이 평균 25%가량 상승했다. 통상 책 가격에서 종이값, 인쇄비, 제본비 등 제작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23% 안팎(책에 따라 18~24%)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이값이 크게 뛰어 그러잖아도 마진이 박한 출판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출판사들은 통상 종이 도매상(지업사)을 통해 용지를 공급받는다. 수많은 출판사와 전문적으로 거래할 뿐 아니라 물류까지 도맡은 지업사를 통하면 제지사와 직거래하는 것보다 싼 가격에 종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매입 규모에 따라 제지업체가 고지한 공장도 가격(고시가)보다 할인된 가격을 적용받는다. 제지사들은 고시가를 바꾸지 않아도 지업사를 통해 할인율을 조절하면서 사실상 시장가격을 형성한다.
그런데 올 들어선 이례적으로 큰 폭의 할인율 축소가 이어졌다. 단행본을 발행하는 주요 대형 출판사들의 할인율은 지난 5월께 7%포인트가량 줄었고, 7~8월께 5%포인트가량 추가로 감소했다. 평소 30%의 할인율을 적용받던 출판사라면 할인율이 23%, 18% 식으로 삭감된 것이다.
이처럼 종이 가격이 급등한 것은 국제 펄프 가격 상승에다 글로벌 물류대란이 겹쳤기 때문이다. 국제 펄프 지수는 작년 말 142.5에서 올 9월 207.8로 46%나 올랐다. 7월에는 중국에서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관련 도서의 인쇄 수요가 늘면서 지수가 216.9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후 다소 안정세를 찾았지만 여전히 작년 말 대비 40% 넘게 오른 상태다. 여기에 컨테이너 부족 등으로 펄프 운반 해상운임이 작년 대비 3배 넘게 오른 점도 종이값 상승을 부추겼다.
잉크값과 인쇄판 제작에 사용되는 알루미늄 가격이 뛴 것도 책 제작단가를 높이는 원인으로 꼽힌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토요일 근무를 하지 못하게 된 제본업체들의 처리 물량이 떨어진 점도 제작단가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이처럼 생산원가는 오르고 있지만 출판사들은 책값을 섣불리 인상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 중견 출판사 대표는 “최근 도서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일정 수준 이상 책값에 대한 소비자의 가격 저항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출판계 시스템이 종이값을 곧바로 책값에 반영할 수 없는 구조”라고 했다.
종이 가격 상승으로 인한 출판계의 타격은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에선 연말 크리스마스 대목을 앞두고 C.H.베크를 비롯한 주요 출판사들이 “크리스마스 전에 주요 서적 인쇄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