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줄고 생산현장의 일자리 수요는 늘어나는 불균형 때문에 1994년 산업연수생 제도를 도입한 이후 지금도 약 220만 명의 외국인이 장단기로 한국에 체류하면서 우리 산업의 한 축으로 버텨주고 있다. 대부분 우리보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못한 나라에서 더 나은 삶의 미래를 꿈꾸며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돈 벌러 온 사람들이다. 살다 보면 국경을 초월해 사랑도 생기고 전쟁 상태에 있는 조국에 당장 돌아갈 수도 없어 더러는 이 땅에서 결혼하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이라면 우리 아이로 태어나서 우리 국민이 된다. 흔히 말하는 다문화 자녀들이다. 그런데 유독 이슬람권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한 편이다. 이슬람혐오증으로 알려진 이슬람포비아 현상도 부쩍 늘었다. 제주도에서 발생한 예멘난민 반대 문제나 대구에서 일어난 이슬람사원 건립 반대 논란도 그렇고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과 관련해서도 불편한 기류가 감지된다. 이슬람권은 19억 명의 인구에 57개 국가를 거느린 지구촌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대 문화권이다. 에너지 협력을 필두로 원전 건설과 기술 플랜트 분야는 물론 우주항공, 바이오산업 등 협력 분야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류 열풍으로 제약, K뷰티, 의료, 문화콘텐츠 부문의 성장도 놀랍다. 경제적 이익만 취하고 글로벌 난민 위기를 외면한다면 국제 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또 지속 가능한 미래 협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미국의 노벨상 과학 분야의 수상자 약 30%가 이주민 출신이라는 보도를 봤다. 다문화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면 되도록 우수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근무한 대학에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공계 교수가 가족과 함께 와 있었다. 아주 뛰어난 석학으로 학교에서 귀하게 모셔온 학자다. 가끔 자신의 문화를 전공하는 내 연구실에 들러 커피 한 잔씩 하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는 주중에는 거의 학교 캠퍼스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주 불쾌한 경험 때문이었다. 학교 주변을 산책하다가 불심검문이라며 신분증 제출을 요구받았고 불법체류자로 몰려 혹독한 곤욕을 치른 후부터였다. 자신이 바로 이 대학의 교수라니까 ‘당신이 교수라고’ 하면서 모욕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연구실이든 실험실 랩이든 캠퍼스 내에서는 대학원생들이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그의 강의와 지식을 듣고 깍듯한 예의를 표하는데, 캠퍼스 밖에서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국과 지옥이 갈린다고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산업현장의 저임금 노동력도 중요하겠지만, 우수한 인재가 많이 들어와야 다문화가 성공할 수 있다. 10년간의 시리아 내전 이후 1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유럽으로 건너간 120만 명의 난민 중 독일이 80만 명의 난민을 선뜻 받아들여 우리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메르켈 총리의 결단이었다. 국제 사회의 책임을 다함과 동시에 의사, 엔지니어, IT 기술자, 전문직 종사자 등 우수 인력을 선제적으로 받아들여 국가 건설에 이바지하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당장 우파 정당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국내 여론도 좋지 않았지만, 우리와 비슷하게 독일도 ‘인구 절벽’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국가 미래를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이다. 난민 속에 섞여 들어올 테러분자나 사회 문제 야기라는 부작용보다는 장기적으로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측면이 훨씬 크고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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