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소배출권 거래제, 대수술 필요하다

입력 2021-10-20 17:28   수정 2021-10-21 00:10

한국의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국제적으로 인정을 못 받고 탄소배출 감축은커녕 증가를 가져오기도 한다. 미국의 참가 거부, 캐나다·호주·일본·뉴질랜드 등의 탈퇴, 유럽 배출권 시장의 교토체제 탄소배출권 생성제도 사용 중단으로 교토체제는 2012년 명맥이 끊어졌다. 더구나 중국의 반대로 신규 체제 설립이 지연되며 아무런 역할도 못 하는 뇌사 상태였다. 그러다 2020년 정식 폐기됐는데, 한국은 구조적 문제로 퇴출당한 유엔 상쇄탄소배출권 생성제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스위스에 본부가 있으며 국내 대기업들이 회원인 글로벌기업협회(World Business Council)가 유엔 청정개발제도 탄소배출권 제도의 이론적 모순에 대응하기 위해 2007년 설립한 탄소배출권제도가 VERRA(Verified Carbon Standard)다.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서는 유엔 제도 및 국제표준화기구(ISO), 캐나다표준협회(CSA) 등 난립하는 배출권 거래제의 문제를 인식하고 독자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이 제도로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운영하고, 2050년까지 1975년 창사 이래 배출한 모든 탄소를 제거하는 ‘넷제로’를 실행할 계획이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가장 인정받는 VERRA와 MS는 한국 배출권 방식과 구조를 거부한다.

탄소배출권은 측량성, 추가성, 인증성, 영구성, 집행성의 5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제3자 독립기관의 배출감축 측량과 인증이 필요하고, 영구적이며 실질적인 감축집행이 가능해야 한다. 특히 배출권의 생명은 추가성이다. 예컨대 강원도 홍천과 베트남 꽝하이 양돈장에서 돼지 분뇨를 하천에 안 버리고 처리하면 베트남 업체에는 탄소배출권이 발행되는 반면 한국 업체에는 발행이 안 된다. 추가성이 그 이유다. 한국에서는 환경법에 의해 돼지분뇨 처리가 의무화돼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기에 추가성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 한다.

사업의 이익성이 가중평균자본비보다 높아도 배출권 인정이 안 된다. 사업성이 있는 프로젝트에서 배출감축이 일어나도, 이 사업은 이익성으로 어차피 진행되기에 추가성 결여로 탄소배출권 발행이 안 된다.

탄소배출권은 ‘방지 배출권’과 ‘제거 배출권’이 있다. 방지배출권은 풍력, 태양광 등 직접 배출을 감축시키는 게 아니라 추후 석탄발전 등으로 배출될 탄소를 방지한다는 가정으로 출발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태양광발전 붐에도 대형 원전 7기에 해당하는 석탄발전소가 건설되고 있어 태양광 발전이 석탄발전을 중단시켜 탄소배출을 감축한다는 논리는 틀리며, 이는 해외도 풍력도 마찬가지이기에 배출권 발행이 안 된다. 또한 태양광 발전의 수익성이 투자비용보다 높으면, 이는 추가성 위반이기에 VERRA도 MS도 한국 태양광·풍력처럼 사업성이 있는 프로젝트 배출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국내 제도는 태양광도 풍력도 다 인정한다.

제거배출권은 나무를 심거나 대기에서 탄소를 포집하는 CCS(Carbon Capture Sequestration) 등으로 직접 탄소를 제거하기에 1t이 제거돼야만 1t을 배출할 수 있는 배출권이 발급되는 배출권 거래제 조건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국내 배출권은 거의 이 조건을 충족 못 하는 태양광 같은 방지배출권이다.

한국의 시스템은 국내 공장에서 수소불화탄소 등 산업가스를 배출하고 이를 포집해 소각시키면 배출권을 준다. 즉 배출 자체를 환경법으로 금지시키지 않고 배출을 하게 하고 그걸 포집해 제거했다고 배출권을 주는 희한한 방식이다. 애초에 배출이 돼서는 안 되는 산업가스를 소각했다고 발행된 배출권을 구매한 다른 기업에서는 그만큼의 배출을 하기에 결과적으로 국내 총배출량은 증가한다. 현 제도는 배출감축을 못 하고 국민과 정부와 기업과 경제에 재정적 짐만 되고 있다. 대규모 수술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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