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취재를 갈 때마다 제주만의 묘한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낯익은 듯 낯설고 국내 같으면서도 이국적인 풍광이 혼재돼 있어서일 겁니다. 제주도의 매력을 풀어놓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한라산과 오름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한라산이 곧 제주도이며 제주도가 곧 한라산”이라고 합니다. 제주를 품고 있는 어머니 같은 산이 바로 한라산이고, 제주민의 생활 터전인 작은 봉우리가 바로 오름입니다. 한라산과 오름을 오르는 것은 제주의 중심으로 떠나는 여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 계단을 오르다가 땀을 식히기 위해 뒤돌아보면 해발 1400~1600m 지점의 거대한 계곡 오른편에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영실 코스에서 가장 매력적인 볼거리인 영실기암이다. 영실기암은 ‘오백나한바위’ 또는 ‘오백장군바위’라고 불리기도 했다. 영실기암은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한라산을 만든 설문대할망에게 자식이 500명 있었는데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자 아들들을 위해 큰 솥에 죽을 끓이다 그만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아들들은 솥에 있는 죽을 보고 맛있게 먹다 사람 뼈를 발견하고 그것이 어머니라는 걸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오백장군바위가 됐다고 한다.
남성적인 기암괴석이 가득한 오백장군바위를 멀리하고 산허리를 따라 길을 돌면 문득 바다가 펼쳐진다. 맑은 날이면 서귀포의 모슬포와 마라도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구상나무 숲길을 빠져나오면 다시금 평탄한 산길이 나타나고 휘파람을 불며 거닐 만큼 편안한 등산로가 윗세오름휴게소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 하산해도 되고 내친 김에 윗세오름까지 오르면 만세동산을 지나 어리목으로 하산할 수 있다.
아름다운 외형과는 달리 다랑쉬오름은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울창한 삼나무가 둘러싼 계단을 시작으로 정상까지 끝없는 오르막이다. 족히 20분을 쉼없이 오르면 전망대가 보이고 그 위로 정상이 나타난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시야는 점점 넓어지면서 가슴까지 시원하게 열린다.
오름의 정상에 서면 용눈이오름, 높은오름, 돛오름, 둔지오름 등 주변 오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름 안쪽으로는 오목하게 들어간 분화구가 보이고 사람 키만 한 억새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분화구 내부는 생각보다 웅장하다. 발을 헛디디면 분화구 안으로 빠질 것만 같다. 이 정도로 깊은 분화구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거대하고 아찔하다. 깊이가 115m나 된다. 전설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나르면서 한 줌씩 흙을 내려놓아 오름을 만들었다. 다랑쉬오름을 만들 때 설문대할망이 흙을 내려놓자 너무 두드러져서 손으로 탁 친 것이 그만 너무 패여 분화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다랑쉬오름에서 내려오면 맞은 편에 납작하게 누운 작은 오름이 보인다. 다랑쉬오름과 모습은 닮았는데 크기는 반도 안 된다. 아끈다랑쉬오름이다. 전체 생김새뿐 아니라 둥그렇게 패인 분화구까지 다랑쉬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닮았다. ‘아끈’은 제주말로 ‘버금가는 것’ ‘둘째’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아끈다랑쉬는 ‘작은’ 또는 ‘새끼’ 다랑쉬인 셈이다. 아끈다랑쉬오름은 오르기도 쉽다. 걸어서 10분이면 정상에 도착해 환상적인 억새 군락을 볼 수 있다.
제주=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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