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기업 생존 위협하는 '입법 리스크'

입력 2021-10-21 17:36   수정 2021-10-22 02:08

2016년 1월 한창 잘나가던 벤처기업 헤이딜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2015년 1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때문이었다. 그해 1월 창업한 헤이딜러는 중고차를 팔려는 개인이 스마트폰으로 차량 사진 5장만 올리면 딜러들이 견적을 매기고, 판매자가 딜러를 선택하는 역경매 방식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개정안은 온라인 자동차 경매회사라도 오프라인 업체처럼 영업장과 사무실 등 각종 공간을 확보하도록 했다.

《입법을 알아야 기업이 산다》는 25년간 입법부 공무원으로 일했던 저자의 경험과 노하우가 총정리된 책이다. 정부의 규제 정책이 국회를 통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일련의 과정을 분석하고,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풍부한 사례가 돋보인다. 법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국내에서 벌어진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덕분에 쉽게 와 닿는다.

저자는 “국회 입법으로 인해 멀쩡하던 사업을 접거나 심한 경우 회사 문을 닫는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며 “입법 리스크가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본질적인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강조한다. 입법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어떤 분야든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표를 의식해 침묵하는 다수 대신 목소리 큰 소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입법이 이뤄지는 게 문제다.

2011년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도록 했다. 2개 이상의 의원급 또는 소규모 병원이 힘을 합쳐 운영하는 네트워크 병원을 금지한 것. 이로 인해 동네 병원들이 다시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책은 기업이 입법 리스크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2년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은 정보기술(IT) 대기업의 국가기관 사업 입찰 참여를 금지했다. 전력 IT를 담당하던 한전KDN도 문을 닫을 판이었다. 한전KDN은 ‘입법 로비’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공기업에 대한 예외조항을 마련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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