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26일 15:4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해운업을 살린다면서 지금까지 정부가 한 게 뭡니까? 물류대란으로 해운사가 살아났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2016년 파산한 한진해운의 자산을 인수해 국내 양대 원양선사 SM상선을 만든 우오현 SM그룹 회장(사진)은 20일 서울 마곡동 SM R&D센터에서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작심한 듯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2018년 이후 약 4년 만이다.
우 회장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대한해운을 2013년 인수했고 2016년 벌크전용선사 삼선로직스(현 대한상선)와 한진해운의 자산을 잇달아 사들이며 해운업을 확장했다. 그는 "5년 전부터 청와대를 찾아가 불안정한 해운업황을 감안한 회계 처리 규정을 도입해달라고 했지만 바뀐 게 하나도 없다"며 "글로벌 공급망 대란을 기회로 해운사들이 정상화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줘야한다"고 강조했다.
해운업은 낮은 가격에 선박을 확보 해 적기에 해상운송에 투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선박 구매와 건조에 수천억원이 들어가다보니 기업의 재무 안정성이 급격히 악화된다는 문제가 있다. 선박 투자를 늘릴 수록 차입금 의존도가 높아지고 기업 신용도는 떨어지는 것이다. 우 회장은 "대한해운을 인수한 후 멋모르고 1조원을 들여 LNG선 4척을 건조했는데 이게 다 부채로 잡히면서 3%대였던 이자율이 후순위 기준으로 7%대까지 치솟았다"며 "버는 돈은 일 년에 1400억원인데 1180억원이 이자 비용으로 빠져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일본처럼 선주사와 운항사를 분리해서 운영하는 것이다. 지주사인 선주사가 선박 소유권을 보유해 재무적 리스크를 지고 사업회사인 해운사는 배를 임대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는 일본의 선주사 제도를 도입하고 선박 투자 비용의 부채 인식 비율을 낮춰달라고 제안했다. 우 회장은 "예전에는 건설사가 임대아파트를 지으면 100% 부채로 잡히고 이것이 자산으로 반영돼 규제 대상이 됐지만 지금은 예외로 인정해주고 있다"며 "건설사처럼 해운사들도 선박 투자금이 부채로 잡히지 않게 예외 규정을 두자고 건의했는데 선박은 주택사업과 달리 해외에서 사업을 한다고 안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했다.
우 회장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해운사들이 운임 담합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중국과 일본이 독점하는 시장에서 중소형 선사들이 같이 뛴 것을 담합이라고 보면 안된다"며 "국내 사정에 맞는 정책을 펴야한다"고 말했다.
우 회장은 "바다에 고깃밥 많이 던져준다고 해운사가 살아나지 않는다"며 "당장 선박 몇 척 더 만들게 해주는 것보다 지금 벌어들인 돈으로 빚을 갚고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게 해서 지속경영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줘야한다"고 강조했다.
◆370억원에 산 한진해운, 일주일에 400억 번다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다 죽어가던 기업을 되살려놓는 '심폐소생술사'다. 동아건설산업, 우방, 신창건설 등 쓰러져가는 건설사를 비롯해 동국무역(현 티케이케미칼), 남선알미늄, 벡셀 등을 인수해 정상화시켰다. 합병한 기업 중 망하거나 매각한 곳도 없다. 그에게 '부실기업 회생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유다. 지난 3년 간 적자를 내던 SM상선도 회복되고 있다. 2016년 말 한진해운의 미주노선과 자산을 인수해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해 흑자로 전환했고 이제는 그룹에 수조원을 벌어다주는 효자가 됐다. 우 회장은 "370억원에 산 한진해운이 그동안 3000억원을 까먹었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400억원씩 벌어온다"며 "코로나19로 해운사들이 로또를 맞은 것"이라고 했다.
SM상선은 올 상반기 매출 7076억원, 순익 3026억원을 올렸다. 올해 영업익은 1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계적인 공급망 병목현상으로 운임료가 급등한 덕분이다. 하지만 해운업이 호황기로 돌아서기까지는 10년이 넘게 걸렸다. SM상선은 신창건설(현 우방건설산업)과 합병하는 전략으로 장기 불황기를 버텼다. 건설사업에서 나오는 이익으로 해운사를 먹여살린 것이다. 우 회장은 계열사 티케이케미칼에도 똑같은 방식을 적용해 회사를 살려낸 경험이 있다.
◆SM상선, HMM보다 더 키울 수 있어
하지만 이같은 고육지책도 해운업에는 통하지 않았다. SM상선의 누적 적자로 인해 그룹 계열사의 여신한도가 낮아지고 이자율이 급등하자 지난해 결국 선박을 대거 처분했다. 그는 "작년 배 6척을 약 1000억원에 팔았데 지금 사려면 1조가 넘는다"며 "마지막 보릿고개를 버티지 못하고 선박을 처분한 것이 가장 후회가 된다"고 했다.이를 계기로 그는 해운업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고 한다. 우 회장은 "해운사들이 지난 10년 벌 돈을 몇달 만에 벌었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다"라며 "닥쳐올 불황에 대비해야한다"고 했다. "얼마 전 경영진이 3조원어치 선박을 건조한다는 것을 만류했습니다. 현금을 있는대로 쌓고 직원 월급 외에 1원도 나가면 안된다고 못박았어요. 겨울이 올지 뻔히 알면서 여름옷 입고 다니면 얼어죽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국내 해운사들은 그걸 잘 몰라요. 차입금 의존도가 너무 높습니다. 유동성을 갖고 있으면 SM상선을 HMM보다 더 키울 수 있다고 봅니다."
SM상선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이유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다. 이 회사는 다음달 코스닥 상장을 통해 최대 8461억원을 조달한다. 삼라마이다스, 티케이케미칼, 삼라 등 그룹 계열사들도 구주매출로 최대 4230억원을 확보한다. 예상시가총액은 1조5230억~2조1153억원이다. 2007년 KSS해운 이후 14년 만에 IPO 시장에 등장하는 해운사로 시장의 관심이 높다.
우 회장은 "SM상선은 안정적인 경영을 통해 주주들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겠다"고 했다. "최근 시장 관계자가 HMM의 정상화가 시기상조라고 말하자 그 회사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HMM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와도 해운업에 대한 신뢰 기반이 약한 겁니다. 해운사는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편견을 깨고 싶습니다."
◆해운사들 유동성 확보하고 차입금 의존도 낮춰야
우 회장은 확보한 자금으로 추가 인수합병(M&A)에도 나설 계획이다. SM그룹은 지난 8월 자동차 부품사 지코를 인수했고 조만간 중소 유리제조사와 경남모직 유리사업부를 합병할 계획이다. 우 회장은 "M&A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기술력"이라며 "쌍용차 인수를 검토한 것도 연구소 때문이었고, 한진해운도 영업권과 IT 네트워크 하나만 보고 산 것"이라고 했다."한진해운이 네트워크에 1870억원을 투자했는데 우리가 배 한척도 안되는 값에 샀습니다. 회사가 껍데기만 남아있더라도 기술력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 회장은 "SM그룹이 다양한 업종의 기업을 인수하다보니 닥치는 대로 부실기업을 사들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1970~1980년 대 건설과 화학 업종 위주의 늙은 그룹 계열사들에 새로운 기술을 붙여서 재탄생시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해운업 재건을 위해 정부가 HMM의 정상화에 적극 나서야한다고도 했다. "HMM까지 죽으면 우리나라 해운업은 다 무너집니다. 감기에 걸려서 약먹으면 바로 살 수 있는 회사인데 우리나라는 죽이려고 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HMM이 전환사채를 끊어내고 부채를 갚을 수 있도록 경영 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여야합니다."
◆'M&A의 귀재'로 불리는 우오현, 그는 누구인가
‘인수합병(M&A)의 귀재’로 불리는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맨손에서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계열사 수만 58곳에 달하는 그룹을 일궈낸 창업자다.우 회장은 광주상고 3학년 시절인 1971년 양계장을 꾸리며 생업에 뛰어들었다. 집안이 서울에서 제약회사를 하다 부도가난 이후 쫓기듯이 내려간 광주에서 친형의 권유로 양계업을 시작했다. 이 때 네 살 아래인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과는 호형호제하며 양계업을 함께 운영했다. 우 회장은 이 때 벌어들인 돈으로 1978년 광주에 새 집을 지으려다 사기를 당하면서 직접 집을 지어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우 회장은 “집 장수가 지은 옆집보다 내가 훨씬 좋은 자재를 쓰고 집도 잘 지어 소문이 자자했다. 당시 천만원들여 만든 집이 1500만원에 팔리더라”라며 “당장 병아리를 뭐하러 보나 건설하자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우 회장과 동고동락하며 집을 짓던 인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대우건설을 품은 중흥건설의 정창선 회장과 모아건설의 박치영 회장이다. "그때부터 신용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 한국 경제 중추를 맡아서 뿌듯하다"고 회상했다.
이 때 상가들을 지어서 투자금 대비 5~6배 이익을 낸 우 회장은 이를 밑천삼아 본격적인 경영인의 길을 걸었다. 36세인 1988년 광주에서 삼라건설을 창업하면서다. 광주 지역 내 작은 건설사로 출범한 삼라건설이 한 단계 도약한 계기는 1997년 IMF외환위기였다. 유례없는 환란에 다수 건설사가 부도를 맞았고, 회사가 보유했던 수도권 택지들이 헐값에 쏟아졌다. 90년대 중반부터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실탄 마련에 나섰던 삼라건설은 이 부지들을 쓸어모아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및 수도권에 진출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이후 SM그룹은 2000년대 초부터 잇따른 M&A를 단행해 지금의 건설?제조?해운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발돋움했다. 특히 자금난으로 법정관리에 처한 기업들이 주요 인수 타깃이었다. 성장 잠재력은 충분한 데 당장 자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회사, 그룹과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회사, 사내 자산이 많은 회사를 중심으로 매물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첫 M&A는 2004년 진덕산업(현 우방산업)이었다. 이후 전지 브랜드 벡셀, 화학 회사 조양, 유리·건설자재 회사인 경남모직, 알루미늄 전문업체 남선알미늄, 스판덱스·화학섬유업체 티케이케미칼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2010년 대한해운 인수를 시작으로 해운업에도 첫 발을 들였다. 이후 대한상선을 인수한 데 이어 한진해운의 미주노선(현 SM상선)까지 품으며 속전속결로 규모를 키웠다.
SM그룹에 대한 시장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부실기업을 정상기업으로 부활시키는 M&A의 귀재란 평가와 동시에 웅진·금호 등 과거 중견그룹의 '문어발 확장'을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다만 SM그룹은 “무리한 성장을 위한 M&A가 아니라 없어질 위기에 놓인 회사들을 발굴해 되살리는데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접근 철학이 전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전예진/차준호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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