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왕국' 인텔이 흔들린다

입력 2021-10-22 17:23   수정 2021-11-21 00:02


‘반도체 왕국’ 인텔에 대한 시장의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표면적으론 코로나19 펜트업(보복) 소비 둔화와 반도체 피크아웃(고점 통과)에 따른 실적 둔화가 인텔의 성장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인텔의 본질적인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본업’인 중앙처리장치(CPU)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애플과 구글이 ‘반도체 자립’에 나서는 등 인텔 의존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전문가들도 주요 고객군 이탈로 인텔의 독보적인 시장 지배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기대에 못 미친 3분기 실적
인텔은 올 3분기 매출이 192억달러(약 22조6000억원)로 지난해 동기보다 5% 증가했다고 2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당기순이익은 68억달러(약 8조1000억원)로 집계됐다. 하지만 인텔이 자력으로 올린 매출은 181억달러(약 21조3000억원)로 시장 전망치에 미달했다. 192억달러엔 SK하이닉스로 매각될 예정인 낸드플래시 사업부 매출이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가량 포함돼 있어서다. 인텔이 지난 7월 제시한 전망치보다 약 1억달러(약 1177억원) 부족하다.

이 같은 소식에 인텔 주가는 이날 시간 외 거래에서 8.79% 급락했다. 앞서 정규 거래에서는 1.14%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부품 부족으로 컴퓨터 출하가 압박을 받고 중국의 청소년 게임 시간 규제로 서버용 반도체 매출이 타격을 입은 가운데서도 양호한 실적을 거뒀지만 투자자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겔싱어 “반도체 부족 2023년까지”

인텔도 전 세계적인 반도체 쇼티지(수급 부족)에 따른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인텔 칩이 들어가는 PC 제조업체들이 전원관리칩과 같은 다른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텔 실적이 부진한 것도 PC 출하량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늘어난 PC 수요가 둔화 추세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텔의 최대 사업부이자 PC용 반도체 실적이 포함된 클라이언트 컴퓨팅 그룹의 매출은 전년 대비 2% 감소한 97억달러(약 11조4000억원)에 그쳤다. 시장에선 반도체 쇼티지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인텔의 실적 방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현재 최악의 상황이지만 내년부터 매 분기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면서도 “2023년까지 수요 공급이 균형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객 이탈…파운드리가 대안 될까
일각에선 인텔이 반도체 쇼티지보다 더 큰 도전에 직면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애플과 같은 글로벌 고객사들이 자체 반도체 설계에 들어가면서 ‘탈(脫)인텔’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그동안 인텔의 최대 고객사로 꼽혔던 기업들이 잇달아 자체 칩 제작 의지를 밝혔다. 애플은 지난 18일 자체 설계한 컴퓨터 칩인 ‘애플실리콘’을 적용해 성능을 대폭 강화한 고성능 노트북 ‘맥북 프로’ 신제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에 재진출한 배경에 고객사 이탈이 있다고 분석한다. 인텔은 올해 3월 200억달러(약 22조5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새로운 파운드리 두 곳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가동 시기는 2024년으로 예상된다.

인텔이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국 정부의 지원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도 경쟁력 약화를 보여주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패권을 되찾기 위해 글로벌 업체를 상대로 한 압박을 강화한 배경에도 인텔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인텔이 최근 삼성전자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 설립에 연방정부 보조금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로비전까지 펴고 있다”며 “‘반도체 제국’으로서의 위상이 퇴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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