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만과 더불어 호주는 중국과 가장 극명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나라다. 호주는 최근 들어 중국에 가장 큰 타격을 날린 국가이기도 하다. 중국이 경제제재의 일환으로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한 결과가 최근 중국의 극심한 전력난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 덕에 경제적 충격을 줄인 호주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과 호주 모두 내상을 입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세계 외교가에서는 호주의 반중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 놓인 세계 대부분 국가에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 설정은 난제이기 때문이다. 호주 내에서도 반중 기조에 대한 찬반 여론이 분분하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모두 호주를 중요시하면서 종종 파열음이 났다. 호주와 미국이 가까워질 때마다 중국은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존 하워드 전 총리가 취임 첫해인 1996년 미국의 대만 문제 개입을 지지하자 중국 언론은 “박쥐같이 구는 호주”라고 비판했다. 달라이라마의 호주 방문 등 중국이 불만을 품을 만한 일이 종종 발생했지만 그럼에도 양국은 2015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원자재 부국인 호주와 세계 최대 원자재 수요국인 중국은 경제적으로 서로가 절실히 필요한 사이였다.
호주 지도자가 공개적으로 중국을 적대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이다. 맬컴 턴불 당시 호주 총리는 중국의 영향력이 우려된다는 강경 발언을 내놨다. 앞서 호주는 중국과의 범죄인 인도협약 비준을 거부하고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남중국해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호주 정보기관들은 중국계 사업가가 중국 정부와 연계돼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턴불 전 총리는 최근 세미나에서 “시진핑 체제에서 군사력 증강, 늑대전사 외교 등 공격적인 대외정책이 이어지면서 위협감이 고조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반중정서를 이용한 정치적 노림수였다는 평가도 있다. 어쨌든 턴불 전 총리의 발언 이후 호주의 실용주의 외교는 끝났고 친미반중 기조가 뚜렷해졌다.
호주 내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로 경제적 충격이 우려된다는 여론이 일었다. 당시 중국과 호주의 무역 규모는 1750억호주달러로 미국과 호주 간 무역액(660억호주달러)의 세 배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호주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행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중국 화웨이의 장비를 배제하는 결정도 내렸다.
중국과 멀어진 만큼 호주는 미국과 더욱 가까워졌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연대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 출범한 ‘쿼드(Quad)’의 회원국 중 하나가 호주다. 호주는 최근 미국, 영국과 손잡고 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를 출범시켰다. 쿼드와 오커스 모두 중국에는 눈엣가시다.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는 최근 중국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동맹관계인 아시아의 여러 국가도 호주와 같은 딜레마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가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국을 화나게 했다”고 분석했다.
호주 전문가들은 한국이 겪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의 리처드 맥그리거 연구원은 최근 SCMP 기고문에서 호주와 같은 상황에 처했던 사례로 한국을 들었다. 맥그리거 연구원은 “한국은 중국의 경제제재를 받으면서도 중국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 등을 공급했는데 이는 지금 호주의 상황과 비슷하다”며 “당시 미국이 방관자였다는 점을 한국인들은 잊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기 발등을 찍은 나라는 중국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로 중국은 유례없는 전력난을 맞았다. 반면 호주는 별 타격이 없어 보인다.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호주산 원자재와 곡물을 수입하겠다는 나라가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피터 카이 로위연구소 연구원은 “원자재 가격 상승 덕에 중국의 대호주 제재 칼끝이 무뎌진 것은 호주에는 행운”이라고 말했다.
과거 호주는 중국에 매년 농산물 130억호주달러어치를 수출해 왔으나 관세 부과 이후 규모가 줄었다. 하지만 세계 주요 경작지의 가뭄 등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새로운 교역상대국을 개척할 수 있었다. 시로 암스트롱 호주국립대 교수는 “중국이 대호주 제재로 얻은 것은 국제적인 평판 하락뿐”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호주 내에서는 중국 시장을 잃게 되면 장기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반덤핑관세 부과 대상인 호주산 와인은 지난해만 해도 중국 수입 와인시장의 40%를 점유했으나 최근 들어 6%까지 축소됐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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