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을 ‘ㄱ’으로 표기하고 장음을 구분하지 않는 한글 표기법 때문에 ‘가가가가가가’로 쓰지만 실제로는 ‘카카, 카-카카-카’로 발음한다. ‘어머니, 이거 걸까요(お母さん,これをかかりますか?)’란 뜻의 히로시마 지방 사투리다.
‘가가 가가가’를 경상도 이외 지역의 사람들이 전혀 이해 못 하는 것처럼 ‘카카카카카카’는 히로시마 사투리권의 사람이 아니면 알아듣지 못 한다고 한다. 일본의 지역색을 보여주는 단골 사례로 꼽힌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인은 ‘섬나라’라는 이미지 탓에 일본을 작은 나라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일본의 면적은 38만㎢로 독일(36만㎢)보다 넓다. 남한보다는 4배 가까이 넓다.
6852개의 섬이 미국의 남북 길이와 같은 3300㎞에 걸쳐져 있는 데다 국토의 70%는 산으로 가로막혀 있다. 가뜩이나 지역색이 강할 수밖에 없는 입지인데 봉건제도의 역사적 전통까지 더해져 지역색이 더욱 짙어졌다는 분석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현대에 들어서도 지역차는 여전하다. 도쿄가 중심인 간토와 오사카 중심의 간사이의 차이가 대표적이다. 간토는 교통요금을 선불로 지급하지만 간사이는 후불식이 많다. 간사이에선 홑겹 화장지가, 간토에서는 두 겹 화장지가 더 잘 팔린다.
파 한 단을 놓고도 간토 사람들은 흰 부분을 주로 먹는 데 비해 간사이 사람들은 파란 부분을 먹는다. 간장으로 간을 하는 간토 음식에는 맛이 진한 흰 파, 삼삼한 다시 문화권인 간사이 요리에는 단맛의 푸른 파가 어울려서라고 한다.
간토에서는 에스컬레이터의 왼편에 서는 게 상식인데 간사이에선 한국과 같이 오른편에 선다. 간토 사람들은 ‘모기에 쏘였다’라고, 간사이 사람들은 ‘모기에 물렸다’라고 말한다.
일본을 대표한다지만 40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두 지역의 차이가 이 정도이니 외진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같은 아오모리현이지만 서쪽의 쓰가루 지역과 태평양 연안의 난부 지역, 이웃 현인 이시카와현과 도야마현 사이의 지역감정은 유명하다.
지역색은 재화와 용역의 소비행태 차이로 이어진다. 지역별 술 소비량(2018~2020년 평균)에는 일본의 지역색이 뚜렷하게 반영돼 있다. 일본의 최고 주당 지역은 아키타다. 이 지역 사람들은 1년에 술값으로 5만7364엔(약 60만원)을 쓴다. 전국 평균(4만2442엔)을 훌쩍 웃돈다. 반면 시즈오카현(하마마쓰시) 사람들의 술 소비액은 2만7937엔으로 아키타 사람들의 절반이 안 된다.
주종에 따른 선호도도 극과 극이다. 아키타 사람들의 연간 사케 소비액은 1만815엔으로 전국 평균(5586엔)의 두 배를 넘지만 오키나와는 1322엔으로 아키타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반면 전국 술 소비량 1위 아키타도 일본 소주 소비액은 7629엔으로 1위 미야자키(1만3475엔)를 비롯해 소주 주산지인 규슈 지역의 절반에 그친다.
일본에서 30년 이상 무역업을 하는 이순배 거산재팬 사장은 일본의 지역색을 단순한 흥밋거리로 여길 게 아니라 정밀하게 분석하고 맞춤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지역색을 이해하지 못하면 일본 사업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장에 따르면 도쿄는 매뉴얼의 전형, 나고야는 다른 지역에 배타적인 문화, 오사카는 전형적인 장사꾼, 후쿠오카는 온화한 기후를 닮아 외지인에 우호적인 상거래 문화가 특징이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사업한 기업인들이 지역색에 따른 접근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본 경제의 부진이다. 세계시장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약해지면서 대다수 일본 기업들이 세계무대로 나가는 대신 내수시장에 기대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역색에 맞춘 마케팅 전략이 더욱 정교해지고 가끔은 상술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지역차를 과장하는 사례마저 나타난다.
일본 사업을 준비하는 한국 기업과 경영인들이 이런 조언을 귀담아들어 ‘일본은 조그만 섬나라’라는 인식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오키나와에서 사케, 시즈오카에서 숙취해소제를 주력사업으로 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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