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마지막 프로젝트다. 내 모든 명성을 걸겠다."
중국 스마트폰·가전업체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52)은 지난 3월 전기자동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장에선 레이쥔 회장의 계획을 비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2010년 설립 이후 스마트폰 업체에서 ‘대륙의 만물상’으로 고속 성장한 샤오미라 해도 자동차 사업만큼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일었다. 미국 애플도 2014년 내부적으로 전기차 프로젝트에 들어갔지만 아직도 사업을 공식화하지 않을 만큼 난도가 높은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레이쥔 회장은 “우리에게는 돈과 뛰어난 연구개발 인력 1만 명이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로부터 약 7개월이 지난 이달 19일 샤오미는 2024년 전기차를 대량 생산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이달 초에는 전기차 법인(샤오미오토)인을 설립하고 연구개발 인력 453명을 배치했다. 중국 베이징에 들어설 첫 번째 공장의 위치도 공개했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에 시장의 시각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며 레이쥔 회장의 ‘라스트 댄스’를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풍부한 현금이 샤오미오토의 든든한 배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반적으로 전기차 스타트업은 유동성 문제를 겪는 사례가 많은데 샤오미오토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다. 레이쥔 회장은 샤오미오토에 초기 자본금으로 100억위안(약 1조7000억원)을 투입하고 10년 동안 100억달러(약 11조3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샤오미가 스마트폰부터 밥솥, 전기스쿠터, 반도체 칩 등 다양한 사업을 보유하고 있어 전기차 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샤오미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과 애플에 이어 세계 3위(판매 대수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18~24세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샤오미의 팬덤이 형성된 점도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샤오미의 매력으로 꼽는다. 샤오미가 국내에서 ‘대륙의 실수’로 불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샤오미 전기차의 주요 고객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레이쥔 회장은 “샤오미는 10여 년 전 직원 3~5명에 불과한 작은 스타트업이었지만 이제는 지혜와 경험을 축적한 회사가 됐다”며 전기차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가 샤오미를 창업한 이유는 끊임없는 도전의식에 있다. 레이쥔 회장은 “막상 상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공허해졌다”며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즐겨 쓰는 말도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이다. 스마트폰 사업에 뒤늦게 뛰어들었다는 약점을 지닌 샤오미가 꾸준히 실력을 키우다 보면 좋은 기회를 만나 성공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직원들에게 “성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샤오미의 판매 전략으로도 이어진다. ‘노 마진’ 전략을 앞세우면서 얻는 이익은 적다. 덕분에 고객을 팬으로 만들어 거대한 팬덤 경제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샤오미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컨설턴트는 “레이쥔 회장은 어떤 사항이라도 늘 깊게 이해했다”며 “그는 중국 소비자에게 믿을 만한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별명은 ‘레이잡스’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자신을 레이잡스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한다. “20대 때라면 레이잡스로 불리는 게 영광스럽겠지만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 이제 잡스를 뛰어넘어야 한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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