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업계 1위 LG생활건강과 2위 애경산업 간 펌핑치약 상표권 소송에서 나온 판결이다. ‘펌핑’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생활용어이기 때문에 특정 회사가 독점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애경산업을 대리한 법무법인 지평은 펌핑치약을 처음 출시한 LG생활건강 측의 상표권 침해 소송에서 1·2심 모두 승소하며 방어에 성공했다.
상황은 2018년부터 복잡해졌다. 애경산업이 후발주자로 ‘2080 펌핑치약’을 출시한 것이다. LG생활건강은 “상표권을 침해했다”고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LG생활건강의 소송대리는 법무법인 광장, 애경산업 측은 지평이 맡았다. 펌핑치약 전쟁의 시작이었다.
LG생활건강은 먼저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신청했다. 하지만 특허청이 상표등록을 받아주지 않자 특허심판원에 이의신청을 했다. 특허심판원은 LG생활건강의 손을 들어줬다. “펌핑치약을 시장에 먼저 내놓고 5년간 광고와 홍보를 진행한 LG생활건강의 상표권이 인정된다”고 봤다. 상표법 제6조 2항의 ‘사용에 의한 식별력인정’을 인용한 결정이다.
특허심판원의 판단을 받은 LG생활건강 측은 애경산업에 상표 사용금지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재판부는 특허심판원과 다른 판단을 내놨다. 애경산업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2심 격인 특허법원 재판부의 결정도 달라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펌핑이 국내에서 LG생활건강의 상품을 표시하는 것으로 인식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 측이 “펌핑은 심장이 콩콩 뛰는 감성적 느낌을 담은 독자 브랜드”라며 “애경산업이 펌핑이 아니라 ‘펌프’ 등 다른 단어를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상표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경산업은 지평의 성창익(사법연수원 24기)·최정규(36기)·허종(변호사시험 1회)·황지현(변시 7회) 변호인단이 대리했다. 성 변호사는 “펌핑이라는 단어는 눌러 쓰는 방식의 제품 용기 사용 방법으로 통한다”며 “우리 사회의 언어습관에 익숙한 이 단어를 LG생활건강이 독점한다면 후발주자는 물론 공익적으로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평 변호인단은 그 근거로 화장품 사용후기에 소비자들이 남긴 글을 다수 제시했다. 허 변호사는 “에센스나 토너 후기를 보면 ‘1회 펌핑만으로도 충분해요’와 같이 펌핑이란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또한 펌핑 용기는 치약뿐 아니라 샴푸, 주방세제 용기 등으로도 널리 쓰인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도 지평 변호인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펌핑은 일반적으로 펌프를 눌러 용기 안에 있는 액체, 거품 또는 젤 형태의 제품을 인출시키는 방법”이라며 “눌러 쓰는 치약에 사용된다고 이를 다르게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펌핑이라는 단어를 제품 브랜드라고 응답한 경우도 51.9%에 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치약은 생필품인데 여성을 대상으로만 조사한 점 △유도성 질문이 포함돼 응답자에게 선입견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평도 설문조사로 맞대응했다. 전국 대도시에 거주하는 만 20~59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 일반 수요자 92%는 펌핑에 대해 ‘위에서 아래로 (되풀이해) 누름’을 뜻한다고 답했다.
또 ‘2080 펌핑치약’ 이미지를 보여줬을 때 89%가 상표를 ‘2080’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펌핑치약을 상표로 인식한 응답자는 0.2%에 불과했다. 재판부가 애경산업의 손을 들어준 ‘스모킹건’이었다.
재판부는 LG생활건강 측의 항소 이유를 전부 기각했다. 하지만 두 회사 간의 소송전은 끝나지 않았다. LG생활건강이 여전히 상표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펌핑이 부른 치약 전쟁은 대법원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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