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1주기 추도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뉴삼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삼성전자는 미국 내 제2파운드리 공장부지 결정을 앞둔 상황. 앞서 "진정한 효도는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뜻의 '승어부(勝於父)'란 표현을 언급한 바 있는 이 부회장인 만큼 선친의 결단력을 이어받아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고인에게 삼성은 삶 그 자체"
25일 오전 경기도 수원 선영에서 열린 이 회장의 1주기 추도식에는 이 부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 유족들만 소규모로 참석했다. 대규모 행사 대신 소탈하게 치르자는 유족 뜻에 따라 간소하게 진행됐다.이 부회장은 이어 삼성그룹 사장단 5명과 함께 용인 소재 삼성인력개발원 창조관에 설치된 '고(故) 이건희 회장 흉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께서 우리를 떠난 지 벌써 1년이 됐다"며 "고인에게 삼성은 삶 그 자체였고, 한계에 굴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으로 가능성을 키워 오늘의 삼성을 일구셨다"고 추모했다.
그러면서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고 각오를 다졌다. 지금의 삼성을 만든 이 회장의 탄탄한 토대 위에 뉴삼성의 가치를 더하겠다는 의중이다.
이건희 회장, 품질 경영부터 '애니콜 화형식'까지
이건희 회장은 '세계 일류기업'의 토대를 닦은 천생 경영인이다. 품질을 최우선하는 이른바 '품질 경영'으로 삼성은 성장을 거듭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삼성그룹의 매출 10조원이 채 안됐으나 2018년 기준 386조원을 넘어섰고, 시가총액도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커졌다.1980~1990년대 갈수록 고도화되는 전자제품을 충족할 메모리 생산이 관건이라고 판단한 이 회장은 과감한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로 메모리 반도체에서의 '초격차'를 일궜다. 1993년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메모리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선 삼성전자는 2021년까지 28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글로벌 메모리 1위 자리를 내놓은 적이 없다.
특히 1993년 미국 전자제품 양판점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삼성전자 제품을 목격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임원들을 불러모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한 '신경영' 선언은 이 회장의 초일류 경영과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유명 일화다.
1995년엔 임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품질은 나의 인격이오'라는 문구를 내걸고 불량 휴대폰 10만 대 이상을 불태운 '애니콜 화형식'도 지금까지 회자되는 일화다. 삼성전자가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갤럭시 시리즈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는 원천이 됐다.
이재용 부회장, 지배구조 개편 등 현안 산적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년간 국정농단 사건 재판과 수감생활로 인해 삼성전자 '오너 경영자'로서 제대로 경영활동을 하지 못했다. 가석방 이후 숨 고르기를 해 온 이 부회장이 '포스트 이건희' 1주년을 맞아 앞으로는 본격 경영 행보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가석방 당일부터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찾아 경영 현안을 보고 받은 이 부회장 앞에는 굵직한 현안들이 쌓여 있다. 우선 새로운 지배구조 안을 내놔야 한다. 지난해 이 부회장의 '4세 경영 승계 포기' 선언 후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집단지배체제 등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삼성전자와 주요 관계사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는 삼성 지배구조 개편 방안과 관련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외부용역을 맡긴 상태다. 이 용역은 올해 하반기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계열사 간 시너지를 강화하기 위해 현재 사업 부문별로 쪼개진 사업지원(삼성전자)·금융경쟁력제고(삼성생명), EPC경쟁력강화(삼성물산) 등 3개 TF를 아우르는 '통합 콘트롤타워'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은 BCG 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내부 검토 후 이를 토대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오너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 지주사 설립 등 다양한 방안이 심도 있게 검토될 전망이다.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신규 투자 구체화는 더욱 중요한 과제. 삼성전자는 그간 총수 부재로 인해 주요 결정이 지연되면서 2017년 9조원을 들인 하만 인수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사실상 올스톱 된 상태다.
올해 5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공식화한 170억 달러(20조원) 규모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 증설 투자 계획도 인센티브 협상 등 문제로 아직 최종 투자 지역이 결정되지 않았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조만간 직접 미국을 방문해 미국 내 제2파운드리 공장 건설 부지를 확정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텍사스주 테일러시 의회가 삼성전자에 세제 혜택 등을 주는 지원 결의안을 최종 의결함에 따라 유력 후보지로 떠올랐다.
재계 관계자는 "TSMC와의 반도체 경쟁, 애플과의 스마트폰 경쟁,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정보 공개 요구, 내년 대선 등 삼성을 둘러싼 중요한 경영 변수가 많다"며 "앞으로의 1년이 삼성전자와 이 부회장에 가장 중요한 1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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