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25일 예정에 없던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그것도 권영수 ㈜LG 부회장을 LG에너지솔루션 최고경영자(CEO)에 임명하는 깜짝 인사였다. 구광모 그룹 회장이 그룹의 명운을 걸고 있는 배터리사업에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을 배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인사를 계기로 취임 후 만 3년이 지난 구 회장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구원 투수’로 투입된 권 부회장
LG에너지솔루션의 수주 잔액은 220조원에 이른다. 최근 세계 4위 완성차업체 스텔란티스와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에 합의하면서 40조원 규모의 물량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1위가 됐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협업 프로젝트도 늘고 있다. 올 들어서만 제너럴모터스(GM)와 미국 합작 2공장, 현대자동차와 인도네시아 합작공장 설립 계획을 줄줄이 발표했다. 덩치를 불리는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LG에너지솔루션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는 타이밍인 셈이다.
구 회장이 ‘CEO 교체’란 카드를 꺼내든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품질 문제 해결과 함께 수주 물량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자금 조달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하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룹의 ‘간판 CEO’를 전면에 내세우면 공급망과 투자자, 이해관계자를 우군으로 끌어들이기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LG답지 않은 ‘깜짝 인사’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2월 LG화학의 전지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출범한 법인이다. 이번 인사로 초대 CEO인 김종현 사장은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김 사장은 최근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차량 배터리 화재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 볼트에 들어가는 배터리 리콜 비용을 사실상 전액 배상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2분기와 3분기에 각각 910억원, 6200억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정기 인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전격 인사를 발표한 배경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LG그룹은 원포인트 인사를 통해 CEO를 교체한 전례가 드물다. 정기 인사 시점도 11월 말~12월 초로 매년 일정했다.
경제계에선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공개(IPO) 일정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IPO 추진 과정에서 CEO가 교체되면 투자자들이 불안해할 수 있고, 자칫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리콜 비용 관련 합의를 마친 뒤 지난 12일 리콜 이슈로 잠시 중단됐던 IPO 절차를 다시 밟겠다고 밝혔다.
세대교체 본격화하나
㈜LG의 경영 구도가 어떻게 변할지도 관심이다. 지금까지 LG그룹은 구 회장과 권 부회장이 경영에 함께 참여하는 구조였다. 젊은 나이에 그룹을 이끌게 된 구 회장을 연륜을 갖춘 권 부회장이 보좌하는 식이었다. 경제계에선 구 회장이 ‘홀로서기’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취임 후 만 3년이 지나면서 그룹 업무를 총괄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자신감을 인사를 통해 드러냈다는 해석이다.
㈜LG는 권 부회장의 후임 최고운영책임자(COO) 인사와 관련해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으며 연말 정기 인사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관련 업계에서는 ‘포스트 권영수’로 권봉석 LG전자 사장,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 등 그룹 내 젊은 CEO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구 회장과 호흡을 맞출 젊은 CEO를 배치해 세대교체를 노릴 것이란 관측이다.
송형석/김일규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