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AI로 고수익"…특금법 시행에도 코인사기 기승

입력 2021-10-26 11:59   수정 2021-10-27 01:24

경찰이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이용한 암호화폐 거래로 고수익을 보장해준다”며 수억원의 투자금을 가로챈 의혹을 받는 일당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암호화폐 거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특정금융정보이용법(특금법)이 시행됐지만 암호화폐 사기 범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 80여 명, 더 늘 것”
26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김포경찰서는 최근 사기 등 혐의로 고소된 암호화폐 업체 A사 임직원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이들은 “우리가 운영하는 AI 프로그램으로 암호화폐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제공한다”고 속인 뒤 투자금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오프라인 투자 설명회가 아니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이들이 권유한 투자금은 200만원에서 1억원까지 다양했다. 이 업체는 AI 프로그램으로 실제로 수익이 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조작된 수익률을 올려 피해자를 속인 것으로 파악됐다.

수익을 얻지 못한 투자자가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이를 돌려주지 않고 잠적하면서 피해 전모가 드러났다. 일부 투자자에게는 “수익에 대한 세금을 내야 투자금을 돌려준다”며 돈을 추가 입금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운영한 홈페이지는 암호화폐 컨설팅회사 B사의 사업자 주소와 회사명을 도용해 개설한 가짜 사이트로 밝혀졌다. 현재 사이트는 폐쇄된 상태다. 한 피해자는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80여 명이고, 피해액은 10억원이 넘는다”며 “자신도 피해를 봤다는 신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특금법, 사기범죄 막기엔 역부족”
최근 몇 년 새 암호화폐 투자가 인기를 끌면서 투자자 심리를 악용한 사기 범죄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 8월까지 접수된 암호화폐 범죄 피해액은 총 4조756억원에 달한다. 올해 초 터진 ‘브이글로벌 사건’은 피해액이 2조2100억원으로 추산된다. 검거 인원은 2018년 139명에서 올해 1~8월 619명으로 늘었다.

그러자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지난달 25일부터 특금법 시행에 들어갔다. 그동안 깜깜이로 운영되던 암호화폐거래소에 대해 ‘신고제’를 도입한 것이 골자다.

이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에 사업 신고를 하지 않은 거래소는 운영할 수 없게 됐다. 특정 거래소에만 상장된 ‘김치코인’을 통해 이뤄진 다단계·유사수신 범죄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행 특금법이 암호화폐 사기범죄를 막는 데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거래소에 대한 규제·감독이 강화됐을 뿐 사기 범죄 예방 조치는 미흡하기 때문이다. 황승익 한국NFC 대표는 “특금법 시행 이후에도 암호화폐의 법적 근거가 없어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이 암호화폐 범죄의 피해 접수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신고 절차가 미흡하다 보니 신속한 수사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처럼 인허가를 받지 않은 암호화폐 사업자가 텔레그램,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사기 범죄를 저지르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AI 거래를 내세우는 업체는 99% 사기라고 보면 된다”며 “인허가를 받지 않은 업체를 통해 투자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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