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인력난이 선진국들의 연말 풍경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터를 떠난 사람들의 복귀가 늦어지면서다. 무너진 공급망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예상이 많다. 농축산물 생산업부터 지식 기반 산업까지 모든 분야로 번진 인력난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자산이 늘자 노동 공급은 줄었다. 은퇴를 택한 사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노동 참여 인구 감소의 25% 정도가 조기 퇴직자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1년간 미국 은퇴자는 전체 인구의 19.3%에 달했다.
팬데믹 기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은 국경을 닫았다. 이동이 제한되자 선진국에선 노동력 공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이주 인력이 사라졌다. 호주에선 양털을 깎을 사람이 없어졌고 미국에선 스쿨버스 운전기사가 귀해졌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영향까지 가중된 영국에선 부족한 트럭운전사만 10만 명에 이른다.
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일터가 코로나19에 감염될 수도 있는 위험한 장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만남이 잦은 식당이 가장 심한 인력난을 호소하는 이유다. 미국에서만 8월 한 달간 숙박 및 외식업 종사자의 6.8%가 직장을 그만뒀다. 평균(2.9%)보다 두 배 많았다. 긴 팬데믹 공백 탓에 노동자들의 기술 수준도 떨어졌다. 간호사 운전사 등의 구인난이 심각한 배경이다.
미국에서 2900개 지점을 운영하는 치폴레멕시코그릴은 올해 5월 직원들의 시간당 급여를 평균 2달러 인상했다. 인건비 부담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소비자 가격이 3.5~4%씩 올랐다. 이달 미국 경제동향보고서 베이지북엔 “한 기업이 코로나19 확산 전 6만5000달러를 지급했던 2년차 공인회계사를 구하기 위해 최근 9만달러를 제안했다”는 필라델피아연방은행장의 얘기가 실렸다.
고용 쇼크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위가 높아진 노동자들의 파업이 잇따르면서 파업과 10월의 합성어인 ‘스트라익토버(striketober)’가 노동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기업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임금 인플레이션”이라며 “경제 전반에 걸쳐 실질임금 인플레이션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 등 자동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세계적 미래학자 마틴 포드는 가디언 칼럼을 통해 “당장 고용주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기술이 제시하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아직은 한계가 크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는 “10년 넘는 시간이 지나면 인공지능(AI)과 로봇은 노동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일부 영역에선 몇 년 안에 극적인 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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