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100’ 공개가 큰 반향을 몰고 왔다(본지 10월 21일자 A1, 4, 5면). 지금의 주력산업과 대기업을 이을 새로운 산업과 기업에 대한 갈망의 반영이란 해석이 나왔다. AI 스타트업 100은 KT·LG전자 등 AI 원팀과 한국벤처캐피털협회(스타트업 발굴), KAIST(평가모델) 그리고 한국경제신문(기획·커뮤니케이션)의 합작품이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AI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보자는 공감대가 출발점이었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나섰다는 점에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선정된 스타트업은 자랑스러워했고, 이름을 올리지 못한 스타트업은 다음을 기약하며 미흡한 점을 알려달라고 했다. 대기업과 벤처캐피털(VC), 투자자들은 선정된 스타트업 정보를 요청했다. 대학 창업 클럽들은 동문기업이 몇 개 포함됐는지 후속 분석을 내놨다.
AI 스타트업 100이 공개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어떻게 선정할지부터 난제였다. 혁신기업 평가로 유명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 못지않은 과학적 모델이 개발됐다. 정량·정성지표가 활용됐고 스타트업의 특성인 잠재력에 대한 가중치 배려가 있었다. 미디어 등 곳곳에 흩어진 AI 스타트업의 비정형 데이터도 빠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AI 알고리즘이 AI 스타트업을 평가하는 창의적 기법이 동원됐다.
1차 단계를 통과한 후보들은 투자자 관점의 엄정한 평가, 마지막엔 평판과 사회경제적 임팩트 등을 따지는 최종 선정위원회의 선별을 거치면서 100으로 추려졌다. AI 스타트업 100의 분포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거의 모든 업종·분야가 망라됐다. 앞으로 어떤 스타트업이든 AI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투자업계에서는 AI 스타트업 100 중 상당수가 유니콘 기업으로, 차세대 대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남은 과제는 이런 전망이 언제 현실이 될 것이냐다. AI 스타트업 대표들은 하나같이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해외에서 먼저, 그리고 더 알아준다고 했다. 여기서 마지막 대목이 한국이 안고 있는 숙제다. 밖에서보다 안에서 아쉬운 게 많다는 얘기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스타트업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하나의 시장,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다시 정치와 정부로 눈을 돌리게 된다. 5류 정치, 3류 행정, 1류 스타트업이 언제까지 공존하기는 어렵다. 제2 벤처붐이라지만 더 많은 스타트업 탄생과 벤처투자를 가로막는 국내 규제는 여전하다. 2017년 아산나눔재단은 세계에서 투자를 가장 많이 받은 100개 업체의 비즈니스 모델이 한국에서는 ‘40% 불가, 30% 조건부 가능’이란 분석을 내놨다. 2020년 동 재단에 따르면 플랫폼, 핀테크, 원격진료, 리걸테크, AI 등에서 규제가 계속 양산되고 있다. 지식기반경제에서 ‘지식’과 ‘권력’이 따로 놀면 혁신은 어렵다. 5류 정치, 3류 행정이 막대한 권력을 움켜쥐고 설치면 1류 스타트업이 국내에서 견딜 수 없다. 권력에 기댄 가짜 스타트업이 판을 치면 시장을 믿는 진짜 스타트업이 피해를 본다.
4차 산업혁명이고 뭐고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지 여야 간 극한 대치는 내전을 방불케 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미래 세대에게 투표권을 더 주지 않는 한 정치혁신, 정부혁신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대로 가면 대전환이란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혹시나 했던 기대가 물거품이 될 판이다. 다음 정부에 딱 하나만 부탁하고 싶다. 5류 정치, 3류 행정이 쥐고 있는 권력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지금보다 덜할 것이다. 스타트업 규제라도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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