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대표 저작 중 하나인 《투자의 배신》이 번역 출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주식시장에 널리 퍼진 50개의 미신을 깨부순다. 그의 책이 많은 독자에게 인정받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 경험에 근거해 주장하지 않는 데 있다. 이 책에서도 그는 역사적인 데이터에 기초해 50개의 미신을 하나하나 검증한다.
채권이 주식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는 것은 주식시장에서 상식처럼 통한다. 피셔는 여기에 그래프를 하나 들이댄다. 1926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10년물 국채와 S&P500지수의 3년 단위 평균수익률을 나타낸 막대그래프다. 그는 “보다시피 채권보다 주식에서 3년 연속 마이너스 수익이 난 경우가 적다”고 지적한다. 장기적으로 주식 수익률이 더 높은 것은 알려져 있지만, 주식이 채권보다 플러스 수익이 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다.
피셔는 이런 반전을 계속 이어간다. 정액 분할 투자로 위험은 낮추고 수익을 높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수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분할 투자는 위험을 줄여주지도, 수익을 높여주지도 않는다”고 반박한다. 1990년대 대형 강세장이 일어나기 전인 1926년부터 1990년 사이 매년 큰돈을 한 번에 투자하는 방식과 12개월 동안 매달 나눠 투자하는 방식을 비교했더니, 3분의 2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한 번에 투자하는 방식이 분할 투자보다 수익률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그는 “조금씩 투자해 단기적인 변동성을 피함으로써 얻는 혜택보다 한 번에 더 오래 투자해 얻는 혜택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업률이 개선되기 전까지 증시가 오르긴 글렀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실업률은 대개 증시보다 훨씬 더 후행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실업률이 계속 올라 마침내 10%에 육박했다. 하지만 증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한 해를 보냈다. 미국과 세계 증시는 각각 3월 저점에서 68%와 73% 반등했다. 실업률이 오르는 동안에도 증시는 급등한 것이다. 피셔는 “증시는 대개 경기 침체가 끝나기 전에 바닥을 친다”며 “그러나 실업률은 경기 침체 막바지 내내 계속 오르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자산 배분은 나이에 따라 다르게 해야 한다’거나 ‘5월에 팔았다가 가을에 사라’ ‘경제가 성장해야 증시가 오른다’ ‘증시는 감세를 좋아한다’ 같은 말도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물론 피셔가 ‘투자의 신’이 아닌 만큼 그의 말이 모두 맞는다고 생각할 순 없다. 피셔는 책에서 ‘빠른 손절이 큰 손실을 막는다’는 말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는 “손절했다고 해서 새로 매수하는 종목이 무조건 상승한다는 보장이 없다”며 “손절을 반복하다가 결국 돈을 전부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어 “매도했던 주식이 경로를 바꿔서 1년 동안 80% 반등한다면 큰 수익 창출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했다. 다만 10% 이상 하락한 종목이 더 내릴지, 반등할지 모르는 상황에선 계속 보유하는 것보다 손절이 안전한 선택인 것은 명확해 보인다. 또 계속 보유 후 반등을 기다리는 것보다 손절 후 재매수하는 게 더 좋은 전략이란 연구도 많다.
그는 ‘패시브 투자는 초보자도 할 만큼 쉽다’는 말에도 반대한다. 사람들이 상장지수펀드(ETF)나 뮤추얼펀드에 오랫동안 투자하지 않고, 시장 상승과 하락에 따라 사고팔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액티브 투자를 하라는 말일까. 투자자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패시브 투자가 어렵다는 주장은 다소 모호하다.
책의 핵심 교훈은 명확하다. 시장의 통념이나 전문가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항상 의심하라는 것이다. 피셔 역시 서문에서 “나는 방금 아무것도 믿지 말라고 말한 셈이니 내가 하는 말조차 믿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막무가내로 자신이 틀렸다고 하지 말고 직접 데이터를 찾아 근거를 대는 훈련을 해보라고 권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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