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대신 외제차 샀다는 20대…비난만 할 수 없는 이유 [더 머니이스트-심형석의 부동산정석]

입력 2021-10-28 07:37   수정 2021-10-28 10:47

최근 월수입이 300만 원인 20대 남성이 집을 포기하고 고가의 외제차량을 소유한 사연이 알려져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배송일을 하는 이 남성은 차량 유지 비용에 월 200만원 가까이 지출하고 있었습니다. 빌라 전세를 위해 받은 신용대출 원금을 상환하는 데 90만원, 주택청약 저축에 10만원을 쓰고 나머지 10만원으로 생활한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이 남성은 자동차 구매와 유지비용이 자신의 재산·수입보다 커 다른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는 이른바 '카푸어'인 셈입니다. 과거에는 집을 구하느라 힘든 '하우스푸어'가 흔했지만, 이제 젊은층 사이에서는 '카푸어'가 많다고 합니다. 남성을 향해서는 비난 보다는 응원이나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많습니다. "본인 돈으로 사겠다는데 남들이 왜 뭐라고 하나", "저 돈을 모은다고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잘못된 선택이라고만은 못 하겠다" 등입니다.

젊은층들의 이러한 소비는 통계에서도 나옵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1~9월) 들어 국내 시장에서 판매된 수입차는 21만4668대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1.9%나 늘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개인 구매 고객 중 20~30대의 비중이 36%에 이른다는 점입니다. 가성비 높은 수입 차종을 중심으로 한 수입차 업체들의 파격적인 프로모션도 있었겠지만 외제차시장이 선전하는 건 최근 몇 년 동안 지속되어 온 트렌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경기가 침체되는 한편에서는 수입차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겁니다. 관련업계 종사자분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분들 또한 많을 겁니다. 특히 자산과 현금흐름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사회초년생 분들이 외제차를 구입하는건 안타까운 측면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집을 팔고 나면 양도세를 냅니다. 양도차익을 계산할 때 양도가액에서 비용을 공제받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비용으로 떨 수 있는 항목이 하나라도 더 있는지 여부를 꼼꼼하게 살핍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비용에도 ‘자본적 지출’과 ‘수익적 지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본적 지출’이란 용도변경이나 개량 또는 이용 편의를 위해 지출한 비용입니다. 이로 인해 해당 부동산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거나 자산가치가 현실적으로 상승하는 지출입니다. 이에 반해 수익적 지출이란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원상복구 성격의 지출입니다. 안타깝게도 자본적 지출은 양도가액에서 공제받을 수 있는데 반해 수익적 지출은 그렇지 못합니다. 싱크대 교체와 같은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용도변경(대수선 공사)이냐 아니냐에 따라 그 분류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외제차를 구입하는 행위는 자본적 지출(가치 상승) 보다는 수익적 지출(소모)에 가깝습니다. 여유가 있는 분들은 상관없겠지만 사회초년생 분들은 본인들의 자산가치를 높이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외제차를 구입하는 것은 오히려 미래를 위한 지출을 줄이게 만듭니다.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은 당연히 자본적 지출인데 반해 임대차 특히 월세 거주는 수익적 지출입니다. 전세는 그나마 원금은 남아있지만 월세 거주는 그냥 없어지는 겁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요.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이 10%를 훌쩍 넘어선 것은 서울 아파트 가격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2013년부터입니다. 이를 월별로 살펴봐도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이 18%를 넘어선 것은 2015년 6월(18.06%), 19%를 넘어선 것은 2019년 12월(19.31%) 그리고 20%를 넘어선 것은 2020년 2월(20.25%) 입니다. 우려되는 것은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자 이에 대한 대체소비로 외제차를 구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이 오르고 이로 인해 내 집 마련의 꿈을 버린 사회초년생들은 집이 아닌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는 등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들은 승차감이 아니라 ‘하차감’을 즐긴다고 합니다. 도로 위를 달릴 때 편안한 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비싼 외제차에서 내렸을 때 주변의 부러운 시선인 하차감에 더 큰 만족을 느낀다는 거죠.

이제 자동차는 단순히 이동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소비하는 태도), 플렉스(부나 명품을 과시하고 뽐내는 행위) 등 최근의 문화도 같은 연장선 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집을 사는 것이 가장 플렉스한 행동이지만 어려우니 외제자동차를 사는 거라는 해석입니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1억원 이상의 외제차 판매량은 2.5배나 늘었답니다. 제대로 된 플렉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의 계속되는 규제로 서울 아파트는 아무나 살 수 없는 ‘트로피’화 되고 있습니다. 가격도 높지만 대출 받기도 어려워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하는 주택수요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고급 외제차를 보면서 플렉스를 생각하기보다는 자본적 지출인 서울의 아파트를 보면서 플렉스를 고민하는 사회초년생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외제차는 수익적 지출에 가까운 한때의 즐거움이지만 집을 장만한다는 것은 미래의 행복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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