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성 이용자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등장한 속어 ‘설거지’가 주요 대학과 직장인 커뮤니티로까지 퍼졌다. 이른바 ‘설거지론’이란 청년 시절에 연애를 미루고 공부해 고소득 직장을 얻은 남성들이, 젊어서 성적으로 문란한 시절을 보낸 여성과 결혼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여성을 그릇에 빗대, 음식은 다른 사람이 먹고 순진한 남성들이 더러워진 그릇을 설거지한다는 의미다. 설거지에 쓰이는 세제에 빗대 ‘퐁퐁남’, ‘퐁퐁단’ 등의 속어까지 파생됐다.
전문가들은 ‘설거지론’을 일종의 여성혐오론으로 해석한다. 여성에게 특정한 프레임을 씌워 악마화한다는 점에서 과거에 유행한 '김치녀', '된장녀' 담론과 비슷하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성은 무책임하고 문란하며 이기적이라는 여성혐오적 시각의 연장선”이라며 “남성들은 이런 여성에 의해 피해를 보는 피해자라는 의식도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런 속어는 남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출발해 대학생, 직장인 커뮤니티까지 빠르게 번졌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경희대 등 주요 대학의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는 최근 며칠 동안 게시판이 ‘설거지론’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도배됐다. 서울대 에브리타임에는 “미래에 설거지 당할까봐 두렵다”, “학점관리해서 로스쿨 가도 결국은 설거지남 되는 것”이라며 ‘설거지론’에 동조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남녀 성별이 고르게 섞인 대학생 집단 특성상 설거지론에 대한 공감뿐 아니라 비판도 거셌다. 서울대 에브리타임에는 “이성을 만남에 있어 성격과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많은데, 연애나 사랑이 오로지 외모, 능력으로만 이뤄진다는 냉소적인 글에 놀랐다”는 학생도 있었다.
고려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배모씨(27)는 “여성을 그릇에 비유하고, 외모와 학력, 재력 등의 기준으로 노골적으로 사람을 비난하는 이야기로 느껴진다"며 "같이 학교 생활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그런 얘기가 오고가니 불쾌하면서도 실망스럽더라"고 말했다.
학력과 학벌을 기준으로 한 비방도 등장했다. 서울대 에브리타임에서는 설거지론에 반박하며 “이 논리는 저학력 남성들이 고소득·고학력 남성을 공격하려고 만든 논리인데, 왜 서울대에서 자꾸 논하냐”는 학생도 나왔다.
하재근 평론가는 "경제 불황으로 젊은층은 취직이나 결혼 자체가 어렵고 불확실하다"며 "그런 상황에서 결혼 자체를 폄하하는 논리라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