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8년, 지금은 양쯔강이라 불리는 장강 남안에 있는 적벽에서 큰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화북지방을 석권하고 기세등등하게 오나라 정벌을 위해 내려온 조조는 때마침 불어닥친 동남풍과 손권·유비의 합동 공세로 대군단이 불에 타버리며 큰 패배를 당했습니다. 바로 중국의 나관중이 지은 유명한 소설 《삼국지연의》 중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 중 하나인 ‘적벽대전’에 대한 일화입니다. 이때 패배한 조조는 패잔병을 이끌고 도망치게 됩니다. 하지만 거치는 곳마다 제갈량의 지시를 받은 조자룡, 장비, 관우의 복병을 만나게 됩니다. 제갈량은 어떻게 이를 모두 예상하고 매복해 두었던 것일까요?
제갈량의 지략에서 나타난 합리적 기대이론
당시 조조는 이르는 곳마다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주유나 제갈량이었다면, 이곳에 군사를 매복하였을 것이다”라고 호기롭게 외쳤습니다. 하지만 조조의 말이 끝나자마자 군사들이 쏟아져 나오며 조조를 추격하였지요. 소설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조조가 오는 길목을 모두 예상하고 군사를 배치하였습니다. 물론 화용도에서 관우가 조조를 살려줄 것까지도 예상하였지요. 제갈량의 이러한 예상은 경제학에서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합리적 기대이론은 경제주체들이 과거의 정보뿐만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시카고학파인 로버트 루카스 교수가 주창한 이론으로 루카스 교수는 이 이론으로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루카스 비판
합리적 기대이론은 정부의 정책 효과 무력성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바로 ‘루카스 비판’입니다. 루카스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실행하면 경제주체들은 정책 변화에 대응해 기대와 행동이 변해 오히려 정부가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루카스 교수의 합리적 기대이론이 등장하기 전 경제학계는 케인스학파가 주류를 형성했습니다. 케인스학파는 경기침체는 공급 부족이 아니라 ‘유효수요’가 부족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면 소비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면서 경기침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요가 늘어나도 공급은 언제든 늘릴 수 있는 상태이므로 물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루카스 비판은 이러한 케인스학파에 반격을 가했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가 침체해 실업률이 높아졌다고 합시다. 정부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립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지만, 경제주체는 이러한 경험이 쌓이고 또한 현재 정보를 빠르게 반영해 미래를 예측합니다. 이에 따라 재정지출이 늘어나면 통화량이 늘어나 물가가 앞으로 상승하므로 근로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게 됩니다. 반면 기업은 생산 비용 증가가 예상되니 근로자의 임금 인상 요구에 대비해 생산에 별다른 변동을 주지 않거나 축소해 오히려 정부가 의도했던 정책 효과를 이루지 못하고 인플레이션만 더 높아지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죠.
효율적 시장 가설
자본시장에서도 합리적 기대이론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바로 ‘효율적 시장 가설’입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은 가격이 이용 가능한 정보를 충분히 즉각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가설입니다. 현재 형성된 주식가격(주가)이 기업에 대한 모든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투자자라도 이용 가능한 정보를 기초로 한 거래에서 시장 평균 이상의 초과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죠. 이것의 의미는 시장이 효율적이므로 자신이 가진 정보는 이미 주가에 반영됐기 때문에 형성된 주가에서 더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합리적 기대이론의 전제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현상을 탐구하는 데 유익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