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9시 서울 관악구의 한 피트니스 센터에서 강사로 일하는 김민석(가명·33)씨가 센터 문을 나섰습니다. 일을 마친 민석 씨는 센터 주변에 세워진 오토바이에 올라 능숙하게 시동을 걸었습니다. 민트색 헬멧에 조끼를 입은 채 말입니다. 민석 씨는 지난해부터 강사 일이 끝나는 야간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민석 씨가 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켜자 인근 치킨업체의 배달요청 알림이 휴대폰 진동으로 울렸습니다. 배달대행업체가 운영하는 기사용 앱이었습니다. 낮에는 피트니스 강사, 밤에는 배달기사로 일하는 민석 씨가 ‘투잡족’ 생활을 택한 것은 일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민석 씨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문을 닫는 센터가 늘면서 취업과 퇴사를 반복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외식이 어려워지면서 음식 배달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습니다. 덩달아 배달업계는 호황입니다. 배달은 운송수단만 있으면 별다른 기술 없이도 해볼 수 있습니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도 가능합니다. 일반인 배달 시대가 열리면서 민석 씨처럼 코로나19 직격탄을 피하지 못한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여러 개의 밥벌이 수단을 갖고 싶은 직장인들부터 대학생, 주부, 은퇴자들까지 배달에 뛰어들었습니다.
고용·노동 분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플랫폼을 이용해 배달·운송업을 하는 근로자는 연간 11만4400여명으로 추산됩니다. 전체 플랫폼 노동자 약 22만명 중 배달업 종사사가 52%로 추정되는데 따른 것입니다. 여기에 전업이 아니라 쿠팡플렉스 등 아르바이트 형태로 가끔 배송 업무를 맡는 인원까지 포함하면 업계에서는 배달원 규모가 연 20만명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쿠팡이츠·배민은 자전거·전동킥보드·오토바이·자동차 등 모든 운송수단을 이용해 배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딜은 도보 배달만 할 수 있습니다. 벤츠와 BMW, 테슬라 등 고급 외제차로 배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서울 고덕동에서 초밥집을 운영하는 윤모 씨(40)는 “최근 같은 단지에 사는 주민을 배달원으로 만나기도 했다”며 “60대 은퇴자 분인데 운동 삼아 걸어서 배달을 한다고 하더라”고 전했습니다.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때 억대 연봉의 배달원이 있다는 소식도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배달원이 늘었고 배달업체들의 프로모션도 많이 줄어 많은 수입을 올리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업계에서는 주 5일을 전업으로 배달할 경우 300만원 초반대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들어가는 비용을 빼면 순수익은 200만원 중반대일 듯 합니다.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라이더는 오토바이 리스나 구매 비용, 보험료, 세금 등으로 한해 400만원 정도가 듭니다. 투잡으로 간간히 배달을 하는 라이더들의 수입은 훨씬 적을 것입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투잡으로 배달도 뛰는 라이더 이모 씨(28)는 “배달이 없을 때는 하루에 두세 건 주문에 그칠 때도 있다”며 “이 경우 몇시간 일해도 수익은 몇 천~몇 만원에 그친다”고 푸념했습니다. 이모 씨는 주로 자취방이 있는 영등포구 인근에서 배달을 하지만 주문이 적은 날엔 배달 수요가 많은 강남까지 원정을 가기도 합니다.
내년부터는 배달원들의 소득 신고 절차도 강화됩니다. 국세청은 내년 2월부터 플랫폼 기업에 라이더 월 소득자료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해 배달원들의 세금을 정확히 걷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개별 라이더가 소득을 축소해 신고하더라도, 국세청에는 플랫폼으로부터 제출받은 소득 정보가 있기 때문에 추후 가산세까지 붙어 ‘세금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회사 몰래 ‘투잡’을 뛰던 직장인이나 공무원들은 더 이상 겸업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됐습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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