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인가, 안경매장인가…세계가 꽂힌 '젠몬스타일'

입력 2021-10-31 17:32   수정 2021-11-01 01:18


젠틀몬스터는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브랜드지만 해외에서는 ‘K스타일’의 선두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펜디, 알렉산더왕, 엠부쉬 등 해외 명품 브랜드들의 협업 ‘러브콜’이 쇄도할 정도다. 지난 9월엔 이탈리아 럭셔리 아웃도어 브랜드인 몽클레르와 ‘콜라보’ 제품을 내놨다.

글로벌 패션 및 유통업계가 젠틀몬스터에 주목하는 이유는 ‘틀을 깬 파격’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수천 평의 아이웨어 매장을 제품이 아니라 조각과 독특한 공간 디자인으로 채우는 설계 역량이 뛰어나다. 아이웨어(안경, 선글라스)를 만들기 위해 젠틀몬스터는 100여 명으로 구성된 창작자 그룹을 운영한다. ‘미국에 와비파커(1위 안경 스타트업)가 있다면, 아시아엔 젠틀몬스터가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성장세도 가파르다.
“브랜드의 세계는 1등만 기억한다”
김한국 대표가 30대 초반이던 2011년 창업한 젠틀몬스터는 애초부터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 200~300달러의 안경을 한국에서 대량으로 파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첫 진출지는 2016년 미국 뉴욕과 중국 베이징이었다. 당시 김 대표는 “파괴적인 혁신으로 세계 1위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가 부여잡은 단 하나의 화두는 “소비자의 인식을 장악한다”는 것. 세상의 모든 브랜드는 “OO(Only One, 유일한 1등)와 MOT(Matter of Time,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사라질 기타 브랜드)로 나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대표와 사내 창작 집단인 젠틀몬스터랩(연구소)이 주목한 건 ‘공간’이다. 1000평 안팎의 공간을 신화와 미래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설계하면서 젠틀몬스터만의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젠틀몬스터의 틀을 깬 공간 실험은 중국 최대 백화점인 SKP를 움직였다. SKP를 운영하는 화롄그룹의 지샤오안 대표가 베이징에 새로운 성격의 럭셔리 백화점을 준비하면서 김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루이비통이 투자한 ‘창작 패션’ 기업
럭셔리 백화점의 공간 설계는 그동안 유럽계의 텃밭이었다. 버디필렉(캐나다), 칼리슨RTKL(미국), CMK(영국) 등이 주도하는 시장이다. 백화점이라는 업(業) 자체가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한 데다 아시아 백화점들은 ‘유럽의 감성’을 모방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아시아계 공간 설계 회사로는 일본의 시나토가 유명한데 도쿄 뉴우먼 등 일본 백화점이 주요 고객”이라며 “젠틀몬스터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 입점한 해외 백화점 명품관의 설계를 맡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백화점 공간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젠틀몬스터는 2017년 로봇 회사인 위저드를 인수해 창작 집단 젠틀몬스터랩을 신설했다. 전기 신호를 활용해 움직이는 ‘오브제’를 창작해냈다. 독특한 공간을 창출하는 ‘젠몬의 스타일’이 나온 배경이다. 이 같은 독특한 스타일을 눈여겨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은 2017년 600억원을 투자했다.

중국, 미국 등 해외 7개국에서 2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젠틀몬스터는 2023년 중국 선전에 3000평 규모의 초대형 매장을 연다. 해외 시장에서의 호평에 힘입어 실적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5년 572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2096억원으로 급증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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