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톰브라운’과 줄곧 협업해온 삼성전자는 지난달 국내 한 패션 브랜드를 한정판 휴대폰의 ‘콜라보’ 파트너로 낙점했다. 국내외 2030세대가 열광하는 남성복 브랜드인 ‘우영미’다. 우영미 쏠리드 대표(사진)는 “삼성전자 내 젊은 직원들이 휴대폰 사용 연령대를 낮추기 위해서는 우리 브랜드와 협업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안다”고 1일 말했다.
우영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브랜드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명품백화점 중 하나인 르 봉 마르셰 남성관 연매출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59년생 영미 누나’의 끈질긴 집념에 최근엔 국내 ‘패션 피플’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우 대표는 사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목표로 삼았다. 1988년 LG패션(LF의 전신)에서 나와 압구정동에 작은 공방 ‘솔리드 옴므’를 열고 남자 양복을 만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우영미의 출발점이다. 우영미는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 20개국 45개 매장에 진출해 있다. 코로나19로 패션업계가 타격을 받는 와중에도 작년 매출은 전년보다 8%가량 늘어난 540억원을 달성했다. 해외 럭셔리 온라인 쇼핑몰인 ‘센스닷컴’에서의 판매량도 작년 대비 두 배 늘었다.
국내 디자이너가 해외시장 개척에 성공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우영미 외에 삼성물산 패션부문 ‘준지’ 정도가 꼽힌다. 일본만 해도 겐조와 꼼데가르송, 이세이미야케 등 유명 디자이너의 브랜드가 해외에서 선전한 사례가 많다. 우 대표는 “20여 년 전 홀로 파리로 건너가 ‘무언가 해보겠다’고 했을 때 엉뚱한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20년간 지켜온 브랜드 정체성은 20~30대 소비자로부터 인기를 얻는 원동력이 됐다. 젊은 세대는 티셔츠 한 장에 50만원에 달하는 ‘우영미 파리’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우 대표는 “역사를 가지고 있어야 명품 반열에 오를 수 있다”며 “긴 호흡으로 브랜드 가치에 충실한다면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우 대표는 지난해 프랑스 진출 후 가장 뜻깊은 해를 보냈다. 프랑스 3대 백화점 중 하나인 르 봉 마르셰 남성관에서 2020년 매출 1위를 기록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다. 아미, 발렌시아가 등 쟁쟁한 글로벌 브랜드를 꺾은 것이다. 패션업계에서는 코로나19로 중국인 관광객의 프랑스 입국이 막히니 우영미의 진짜 실력이 나타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2002년 “내 옷에 자신 있는데 왜 안 돼?”라는 자신감으로 무작정 파리 패션위크에 참석한 지 18년이 되던 해였다. 우 대표는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K패션’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해외 디자이너나 바이어들이 한국 길거리 패션을 보고 ‘최고’라고 한다”며 “세계 어디서든 명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