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준호의 딜 막전막후] SM엔터 이수만의 '마지막 오디션'

입력 2021-11-01 17:31   수정 2021-11-02 00:21


“M&A(인수합병) 협상이 아니라 이수만 선생님 앞에서 오디션을 치르는 느낌입니다.”(인수 후보 관계자)

올 한 해 가장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M&A 소식은 단연 1세대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매각이다. HOT, SES 등 1990년대를 수놓았던 아이돌그룹에서 보아, 소녀시대, 엑소, 샤이니, 에스파까지. 10~40대 대부분이 한 곡 정도는 흥얼거릴 수 있는 아티스트들의 산실인 SM엔터를 창업해 지금의 규모로 키운 이수만 총괄프로듀서가 경영권을 시장에 내놓으면서다.

업종 특성 탓인지 유독 협상장 밖에서부터 많은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이 프로듀서가 현 시가총액의 두 배인 4조원을 요구하고 있다” “에스파가 예상보다 더 성공하자 매각하지 않기로 의사를 바꿨다” “수십~수백억원의 연봉을 요구했다” 등 여러 설이 대표적이다.
'선생님' 이후 SM엔터 어디로
거래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프로듀서는 매각 절차가 본격화된 이후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등 주요 후보 기업의 최고 경영진과 만나 식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듀서가 앞으로 SM엔터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등을 물었고, 이 과정에서 엔터사업을 ‘하대’하는 모습을 보인 일부 후보가 예선 탈락했다는 후문이다. ‘오디션’처럼 거래가 진행 중인 셈이다.

일반적인 M&A처럼 투자은행(IB) 등 뚜렷한 자문사가 있는 거래도 아닐뿐더러 공식 절차가 정해져 있지도 않다 보니 이 프로듀서의 의사결정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시장의 소문처럼 이 프로듀서가 가격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면 오히려 공개 매각으로 경쟁을 유도하는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다. 스스로도 K팝의 ‘창시자’로 자부하는 이 프로듀서의 ‘은퇴 무대’다 보니 실제 가격 외에도 여러 조건이 논의되고 있다.

이 프로듀서는 ‘출제 의도’를 넌지시 밝히기도 했다. “하나의 선생님이 없어지면 K팝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체계화시켜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올해 7월 세계문화산업포럼(WCIF) 기조연설자로 선 이 프로듀서의 발언이다. 자신을 지칭해온 ‘선생님’에 빗대 은퇴를 앞둔 고민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SM의 '시스템', 매각 후에도 이어질까
이 프로듀서는 ‘K컬처’의 글로벌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문화 영역에 ‘시스템 경영’을 구축한 주인공이다. 일본 가요(엔카)의 아류로 폄하되던 국내 가요 장르를 산업화했고, 이를 아시아는 물론 글로벌 무대로 확산시켰다. 국내 문화산업이 특정 작곡가·제작자의 역량에 의존하는 기존 산업 모델에서 벗어나 잠재력 있는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육성하고 적정 시기에 데뷔하는 예측 가능한 산업으로 커지는 덴 그의 공이 적지 않다.

자본시장에 미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한탕 사기’ ‘조폭 비즈니스’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연예기획사 사업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IPO)해 20여 년간 이를 유지했다. 하이브 등 후배 제작사들이 IPO 시장에 등장하고, 공모 자금을 바탕으로 저스틴 비버 같은 글로벌 아티스트들이 소속된 이타카홀딩스를 인수하는 등 도약할 수 있었던 것도 SM엔터가 닦은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그런 가운데 개인 회사로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불거지는 등 어두운 면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이번 M&A의 관건 중 하나는 그가 구축한 시스템을 더욱 정교화해 ‘이수만 없는 SM엔터’에 대한 청사진을 누가 더 뚜렷이 제시하느냐에 달렸다. 현재 새 주인으로 CJ E&M이 유력하게 떠오른다. SM엔터로서는 다양한 시너지를 기대해볼 만하다. 다만 70세를 맞이한 지금까지 레드벨벳 멤버의 앞머리 방향까지 챙기는 이 프로듀서의 ‘디테일’은 당분간 어떤 새 주인이 오더라도 대체하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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