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들이 탄소제로 시간표 합의에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온실가스 배출량 1·3·4위국인 중국 인도 러시아가 합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 정상은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이들의 거부 논리는 명확하다. 제조업 비중이 큰 자신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을 압박하는 것은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다름 아니며, 이 때문에 선진국보다 유연한 탄소중립 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동선언문은 탄소중립 달성 시기의 경우 2050년이 아니라 ‘세기 중반께’로, 석탄발전 폐지 시기는 2030년이 아니라 ‘가능한 한 빨리’로 각각 두루뭉실하게 표현했다.
이쯤에서 한국도 탄소중립 계획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글로벌 차원의 시간표 채택이 사실상 무산된 마당에 한국만 과속하고 폭주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순배출 제로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그 속도가 미국 등 선진국보다 2~3배나 빨라 제출 전부터 ‘무리’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더구나 그런 목표 달성에 10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기술적으로도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제조업 비중이 큰 산업 구조상 이런 폭주가 재앙적 결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임기가 반 년여 남은 정부가 대못 박듯이 서둘러 결정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의때 ‘담대한’ 탄소중립 계획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그렇게 체면을 세웠으면 됐다. 이제부터는 땅에 발을 딛고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다행히 유엔에 제출한 탄소중립 계획을 재조정할 여지가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저탄소·고효율’ 원전 기술 보유국이다. ‘탈원전·탄소중립 병행’이라는 미망(迷妄)에서만 깨어나면 탄소중립은 얼마든지 달성 가능한 목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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