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목구어' 탄소중립 시나리오

입력 2021-11-02 17:27   수정 2021-11-03 00:09

우리나라 땅에서 2050년까지 화석에너지를 완전히 몰아내는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발표됐다. 거리를 메운 내연기관 자동차, 석유화학 단지, 화력발전소, 주유소 등을 30년 안에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300년가량 지속된 탄소문명을 단 30년 만에 끝장내고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는 엄청난 계획이다.

주어진 30년의 시간은 발 한번 헛디디면 돌이킬 새도 없는 초단기간이다. 어떤 장애와 충격이 도사리고 있는지 가늠조차 안 된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최대한 정교한 계획을 짜도 불안할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위원회가 내놓은 시나리오를 한마디로 평하면 ‘연목구어(緣木求魚)’ 계획이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처럼 목적과 수단이 일치하지 않아 성공이 불가능한 계획이란 말이다. 문명사적 대전환을 이끄는 계획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다.

편파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탄소중립위가 불과 출범 5개월 만에 탄소문명의 종말 시나리오를 뚝딱 내놓은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어서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계획의 실현 가능성 여부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제약 조건을 꼼꼼히 따져 수립됐는가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시간제약, 기술제약, 그리고 예산제약 등을 따져봐야 한다. 아무리 간절히 원하는 목표도 시간이 충분치 않거나, 마땅한 기술이 없거나, 감당할 수 없는 예산이 필요하다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과 9년밖에 남지 않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무려 40%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는 시간제약을 고려해 설정됐다고 보기 어렵다. 온실가스를 40% 줄인다는 말은 좀 거칠게 표현하면 화석연료를 현재보다 40%가량 쓰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9년 만에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에너지설비의 수명은 대개 수십 년은 너끈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너지 전환을 위한 9년은 그야말로 찰나에 가까운 초단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실험실 수준에서 이론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무탄소 기술들이 앞으로 10년, 20년 만에 개발돼 상용화된다는 가정은 지나치게 희망에 기초하고 있어 기술제약을 반영했다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수소발전이나 암모니아발전으로 전체 전력의 21.4%나 공급하겠다는 계획은 현재로는 공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경제를 막연한 기술개발 기대에 의존해 운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도박이다.

정부 계획이라면 의당 함께 제출돼야 할 비용추계조차 내놓지 못하는 것은 예산제약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거나, 너무 엄청난 비용에 놀라 차마 발표를 못 한 것으로 추리된다. 에너지저장장치 설치에만 최대 1248조원이 넘는 비용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내부에서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현재보다 20배 이상 필요할 태양광과 풍력의 설치비용, 발전용량 증가에 따른 송전설비 비용, 화석에너지 기반 시설의 좌초비용 등을 고려하면 수천조원을 훌쩍 넘었을 테니 예산제약에 질끈 눈을 감아 버렸으리라.

탄소중립은 꼭 이뤄야 할 우리 모두의 목표다. 목표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화끈한 목표 설정보다 현실의 제약을 고려한 질서 있는 과정 설계가 중요하다. 첫째, 기후변화의 역사적 책임성과 우리 산업구조의 특수성을 고려해 도전적이면서도 현실성 있는 중간 목표를 설정하고 국제사회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둘째,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나열된 꿈의 무탄소 기술들이 하루속히 상용화될 수 있도록 연구개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꿈의 무탄소 기술이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현재 수준에서 재생에너지와 함께 무탄소에너지인 원자력을 유지함으로써 달성 과정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연목구어 계획으로 경제에 재갈을 물려 침체의 늪으로 빠뜨릴 뿐만 아니라 목표 실현에도 실패해 국제적 신뢰마저 잃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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