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후생 줄고 경쟁국 배만 불려…중기적합업종 10년

입력 2021-11-03 17:10   수정 2021-11-11 15:45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가 4일로 10년을 맞는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고, 관련 중소기업 종사자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이명박 정부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가 이끌던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지정을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10년간 110개 업종 및 제품이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여러 부작용이 누적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는 소비자 후생의 저해가 꼽힌다. 2013년 지정된 중고차 판매업이 대표적이다. 대기업 진출이 가로막힌 사이 중고차 판매업 전반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고객에 대한 강요, 불투명한 가격 결정 등이 문제가 되면서 판매업체를 거치지 않고 중고차를 직거래하는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다. 최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거래된 중고차 251만5000대 중 54.7%인 137만6000대가 당사자 간 직접 거래로 매매됐다.

중국 등 경쟁국의 배만 불려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2012년 중기적합업종에 지정된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이 단적인 예다. 당시 삼성과 LG 등 주요 대기업은 관련 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보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었지만 이 같은 정부 정책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삼성전자는 2014년 관련 사업 규모를 일찌감치 줄였으며, LG이노텍은 지난해 10월 사업 철수를 공식화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동안 중기적합업종에 따른 규제를 받지 않는 중국 LED 조명 제품이 국내 시장을 점령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사용 실적이 있어야 해외 판매도 가능하지만 LED 조명은 중기적합업종에 막혀 초기 판로 개척에 실패했다”며 “LED 산업에 평생을 바치겠다던 유능한 기술자들이 눈물을 머금고 떠났다”고 전했다. 중국산 김치가 식당과 급식업체 시장의 85%를 장악한 것도 같은 이유다.

중소기업이 아닌 해외 대기업이 중기적합업종에 따른 반사효과를 크게 누리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다. 2013년 제과점업이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되자 스타벅스 등 해외 업체가 반사이익을 누렸다. 동네빵집 창업이 2016년 이후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같은 기간 스타벅스 매장 수는 1.5배 이상 늘었다.

장기간의 업종 보호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 6년까지만 중기적합업종에 지정한다는 당초 취지도 무력해지고 있다. 2018년 생계형 적합업종제도가 신설되면서 무제한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고추장 등 장류 제조업, 떡볶이 떡 제조업, 서적 판매 소매업 등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전환돼 계속 보호받고 있다. 중고차 판매업 역시 2019년 중기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됐지만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대기업의 진출은 여전히 막혀 있다. 소프트웨어 등에 대해서는 대기업의 공공조달시장 참여가 제한되며 전자정부 수출, 코로나19 백신 플랫폼 구성 등에 차질을 빚었다.

윤상호 한국지방세연구원 실장은 “제도 시행이 만 10년에 이르렀다면 그에 따른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전무하다”며 “관련 산업 경쟁력은 후퇴하고 기존 사업자들의 지대 추구만 보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경목/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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