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안(가수 솔비)만큼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작가는 드물다. ‘근본 없는 예술’을 하는 가수 출신 비전공자라며 그를 깎아내리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시장과 미술계 분위기는 정반대다. 그의 작품은 경매, 아트페어 등에 나올 때마다 최고가를 경신하며 ‘완판’ 기록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는 개막도 하기 전에 전시작들이 다 팔렸고, 여분으로 준비했던 그림도 거는 족족 팔려나갔다.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주목받는 작가다. 2019년에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예술 축제 ‘라 뉘 블랑쉬 파리’에 초청됐고, 올 9월에는 현대미술 중심지인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에 내건 작품 세 점이 모두 팔려 화제를 모았다. 권 작가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미술에 집중한 결과”라며 “여러 논란이 나를 더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경기 양주 가나아뜰리에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권 작가는 항상 각종 논란과 루머를 몰고 다녔다. 미술을 시작한 이유도 가수 시절 시달렸던 악의적인 헛소문에서 비롯됐다. 한창 인기를 끌던 2009년 갑작스레 가짜 음란 동영상이 퍼졌다. 범인들이 경찰에 잡혔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영상이 거짓이라는 검증까지 받았는데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를 구한 건 치료를 위해 배운 그림이었다. 미술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자신의 작품으로 다른 이들의 마음도 치유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권 작가가 생각해낸 건 음악과 그림을 융합한 ‘셀프 컬래버레이션’. 하고 싶은 얘기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 틀고, 무대에 설치한 대형 캔버스 위에서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였다. 이름은 가수 솔비와 작가 권지안이 협업한다는 뜻으로 지었다. 이렇게 2017년 5월 발표한 ‘레드’에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방송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쌓은 ‘백치미 이미지’가 발목을 잡았다. “어릴 때부터 가수 준비를 하다 보니 잘 모르는 게 많아요.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제 성격이 워낙 솔직해서 그게 안 돼요. 그러다 보니 백치미로 웃음을 주는 역할을 맡았어요. 그런데 이런 이미지 때문에 작품이 폄하를 당하더군요.”
미술 비전공자라는 점도 비난의 이유가 됐다. 권 작가는 “당연히 미대 출신 작가보다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많이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미술을 할 자격이 없는 건 아니다”며 “나만의 인생 경험과 깨달음을 표현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돌파구로 택한 건 해외 진출. 선입견이 없는 해외 미술계는 그의 작품에 대해 “독창적이고 에너지 넘친다”는 찬사를 보냈다. 전시 요청도 쏟아졌다. 유네스코 파리 본사에서 열리는 예술 행사에서 공연 및 전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5월 열릴 예정이었던 이 전시는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취소됐다.
지난해 12월 터진 ‘케이크 표절 논란’은 작가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당시 권 작가가 제작해 파는 케이크의 디자인이 유명 현대미술 작품을 표절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는 “예술작품도 아니었고 결코 돈이나 명성을 얻으려는 목적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케이크를 만들어 일부는 보육원에 보내고 나머지를 판매해 수익금을 기부하려고 했죠. 재미있는 이벤트라고 생각했는데 여론은 저를 ‘파렴치한 표절 작가’로 몰았습니다.”
10년 전처럼 그의 해명에 귀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대응하기로 했다. “작가라면 작품으로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초를 녹여서 캔버스에 박고 강렬한 단색을 칠해 묵직한 분노의 에너지를 담았습니다.” 의도는 적중했다. 이렇게 만들어낸 게 최근 런던 사치갤러리와 KIAF에서 완판된 케이크 연작이다.
요즘 권 작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1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트페어 초대전과 서울 갤러리나우 개인전을 비롯해 내년 1월 LA(로스앤젤레스) 아트쇼, 2월 라스베이거스 개인전, 4월 파리 그룹전, 7월과 8월 뉴욕 전시가 예정돼 있다. 권 작가는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본다”며 “앞으로도 신선한 놀라움을 선사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글=성수영 기자·사진=엠에이피크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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