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1980년대 말, 한국 바둑은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대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기사들이 ‘정석을 깨는 시도’를 한 것이다. 정석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수는 틀린 행위로 여겨졌지만 우리 기사들은 과감하게 기존의 틀을 깨나갔다. 그 과정에서 숨겨져 있던 새로운 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한류’라는 말은 그 무렵 처음으로 등장했다. 외국의 기사들이 정석을 깨는 한국 기사의 수에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한류라는 말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외국에서 한국의 특징적인 무언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할 때 사용하는 단어였다.
기존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시도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난다. 카카오뱅크를 만들 때의 일이다. 출범 당시 많은 사람이 카뱅의 성공을 의심했다. 대표이사로 근무하면서 바라본 현장은 더욱 심각했다. 전혀 배경이 다른 정보통신기술(ICT) 출신(카카오)과 금융권 출신(한국투자증권)이 모여 하루가 멀다 하고 부딪쳤기 때문이다. 은행은 철저한 규제 안에서 성장해왔고 ICT는 규제 밖에서 자유롭게 성장해왔으니 그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관행’이다. 서로에게 던졌던 “이게 왜 그런 거야?”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변했고,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시작하면서 카카오뱅크만의 혁신이 생겨났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과정은 마치 바둑에서 정석을 깨고 새로운 수를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한국 경제는 따라잡기(catch up) 단계를 넘어 선도경제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는 문화가 널리 확산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규제 시스템으로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스스로 알아서 도전하고 그 책임을 지는 체제’가 바로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이다. 이제 누구도 새로운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만 있다. 이런 새로운 시도를 기존의 관념에 사로잡혀 막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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