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최고금리 왜 낮췄나"…내년 지옥문 열린다

입력 2021-11-06 06:45   수정 2021-11-06 16:50


법정 최고금리 인하 정책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는 연 20%로 낮췄지만, 제 2금융권의 대출금리는 17%까지 육박하도록 올랐기 때문이다. 이를 비교하면 3%포인트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다 금리는 상승 쪽으로 기울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임기 초 27.9%였던 법정 최고금리는 2018년 24%로 한차례 하락한 데 이어 3년 만에 4%포인트를 추가 인하하면서 연 20%까지 떨어지게 됐다. 총 7.9%포인트 인하하면서 서민들의 이자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정책 취지를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법정 최고금리 인하 정책이 시행됐음에도 신용카드사와 저축은행, 보험사 등 서민들의 대출 창구로 불리는 2금융권의 대출금리가 오히려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 정부의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가 이어진 탓이다. 주요 카드사 카드론(장기카드대출)과 저축은행 가계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석 달 새 1%포인트 이상 오른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서민을 겨냥한 대출 이자 부담이 내년 더욱더 가파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란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을 회수하는 조치가 대두되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이 불가피한 상태다. 정부가 내년 '가계부채 관리강화 방안'을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금융사들의 대출금리 인상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2금융권 '대출금리' 끝없이 오른다…'가계대출 규제' 여파
6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7개 전업 카드사(신한 삼성 KB국민 현대 롯데 우리 하나)의 지난 9월 신규 카드론 평균 금리 구간은 연 11.46~15.43%로 집계됐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조치 시행 이전인 지난 6월 집계된 구간 연 12.45~13.52%와 비교하면 금리 상단이 3개월 새 1.91%포인트 오른 것이다. 최근 카드사들이 우대금리 2%까지 폐지하면서 카드론 금리는 약 4%포인트가량 증가하고 있다.

저축은행 대출금리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KB저축은행의 지난 9월 신규 가계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연 12.67%로 지난 6월 집계된 연 11.23%보다 1.44%포인트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우리금융저축은행 상품의 대출금리는 연 14.7%에서 15.91%로 1.21%포인트 올랐다. 한성저축은행, 진주저축은행, 하나저축은행도 3개월 새 0.5%포인트 이상의 폭으로 대출금리가 오른 상태다. 최고 금리는 17%대에 달한다.

보험사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생명·손해보험사의 10월 기준 분할상환 방식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올해 초 대비 각각 0.28%포인트, 0.52%포인트 상승한 연 3.34%, 3.55%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결정한 기준금리 인상 폭 0.25%를 웃도는 수치다.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연 20%로 내려갔음에도 2금융권 대출금리가 오르는 상황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외에도 정부의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가 2금융권의 대출금리 상승을 부추겼다고 보고 있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공급할 수 있는 대출 규모가 줄어들면 우대금리를 없애거나 축소하고 가산금리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대출 수요를 억제할 수밖에 없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8월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의 조달금리가 올라간 상황에서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로 대출 공급 한도가 줄어드니 금융사별로 우대금리를 없애는 등의 방식을 고안해 자체적인 조정에 나선 것"이라며 "2금융권은 기본적으로 대출금리가 높은 편이기에, 차주가 체감하는 금리 인상 속도는 더 빠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에 DSR 조기 도입까지…내년 금리 인상 폭 커진다
더 큰 문제는 서민을 향한 대출 이자 부담이 내년 더욱더 가파른 속도로 확대될 것이란 점이다.

세계적으로 유동성을 회수하는 조치가 대두됨에 따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내년 초까지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 3일(현지시간) 통화정책 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이달 말부터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에 돌입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Fed가 달러 풀기에서 정상적인 통화정책으로 회귀한다는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이에 따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달 25일로 예정된 회의에서 0.25%포인트 인상 결정을 한 뒤, 내년 1월 0.25%포인트 추가 인상까지 단행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유지해 온 '선제적'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면서 Fed의 동향을 살필 가능성이 커져서다. 단 석 달 만에 기준금리가 0.5%포인트 대폭 오르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는 셈이다.

2금융권은 내년에도 정부의 대출 규제 방침 준수를 위해 가산금리를 올리거나 우대금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출자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움직일 여지가 크다. 앞서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에 담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 조기 도입이 대출금리 상승을 부추길 요소여서다.

금융당국은 당장 내년 1월부터 2금융권의 DSR 기준을 기존 60%에서 50%로 하향 조정한다. 금융사별로 관리해야 할 평균 DSR 비율도 좁아진다. 보험은 기존 70%에서 50%로, 카드는 기존 60%에서 50%로 기준이 변경된다. 저축은행과 캐피탈도 DSR 비율이 기존 90%에서 65%로 조정된다. 그간 유예됐던 카드론도 내년 1월부터 DSR 산정에 포함된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카드론이 있는 다중 채무자를 관리하기 위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올해 안에 추가로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내년부터 2금융권 대출 창구를 주로 이용하고 있는 서민,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이 급증할 수 있는 만큼 정책금융 지원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높아질 경우 대출을 보유한 전체 가계가 내야 할 이자는 12조원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소득이 줄어든 상태에서 상환 능력이 낮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이자 부담이 늘면, 가계에 미치는 충격은 배로 커질 수밖에 없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2금융권을 겨냥한 대출 규제를 강화한다는 것은 결국 총량 규제와 비슷한 효과를 내겠다는 의미다. 내년에는 금리 상승 시기 속 불안정한 시장에서 대출금리가 더 빠른 속도로 오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2금융권을 주로 이용하는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증가할 경우 금융시장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은 만큼, 취약계층의 대출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정책금융 지원 방안을 고민할 시기"라고 진단했다.

오윤해 KDI 연구위원은 "향후 금리가 추가 인상되고 DSR 규제가 강화되면 누적된 코로나19 피해로 자금 부족을 겪는 이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며 "코로나19의 충격을 크게 받은 자영업자의 대출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가 자영업자의 대출을 장기상환 저금리 대출로 대체하는 대환상품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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