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사이코패스 고유 명사처럼 불리는 유영철은 2004년 20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아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수감 전 이미 특수 절도 및 성폭행 등으로 전과 14범이었던 유영철은 출소 후 2003년 9월 24일부터 2004년 7월 13일까지 단 10개월여의 기간 동안 20명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 사회에 충격을 줬다.
유영철 검거 후 17년이 흐른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치안율이 높기로 손꼽히는 나라가 됐다. 지난해 경찰청이 발행한 백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강력범죄 검거율은 77.2%였다. 4년 전인 2015년 70.7%와 비교해 6.5% 포인트 증가한 것. 특히 살인의 경우 2017년과 2019년엔 100% 이상을 달성했다. 그 해에 발생한 사건 보다 검거 숫자가 많았던 것.
전문가들은 한국 경찰들의 높은 범인 검거율은 유영철과 관련 깊다고 입을 모은다. 이전까지 살인은 원한이나 우발적으로 발생했다고 생각했다면, 유영철의 등장으로 동기 없는, 무차별 살인이 가능하다는 걸 인지하게 됐고,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을 수사하는 과학 수사와 프로파일링 기법이 전문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됐다는 것.
넷플릭스 오리지널 '레인코트 킬러:유영철을 추격하다'는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유영철의 범죄 행각을 쫓으면서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수사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됐던 인물로도 알려진 유영철의 범죄 행각은 영화 속에서 미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잔혹했다. 유영철에 대한 서사는 없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혼인 관계 등은 전혀 다루지 않고 살인 그 자체와 엽기적인 시신 훼손 방식을 전하는데 집중했기에 일각에서 불거진 '범죄자 미화'라는 우려를 날렸다.
노인을 살해했을 때와 달리 전화방 종업원, 출장 마사지 도우미 등 성매매 여성들의 경우 자신의 집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둔기로 머리를 내리쳐 살해하는 방식은 동일했지만 그 이후의 과정에서 진화한 모습을 보인 것. 유영철은 시신을 훼손해 옮긴 후 야산에 암매장을 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범죄자 유영철을 모티브로 이 같은 작품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계 캐나다인인 존 최(John Choi)와 함께 연출을 맡은 롭 식스미스(Rob Sixsmith)는 "이 작품을 에워싸는 수많은 테마가 있다"며 "프로파일링 기법의 탄생, 경찰 수사 기법, 정의, 사회학, 계급 문제, 그리고 밀레니엄의 시초에 아주 흥미로운 도시였던 서울에 관한 이야기. 그로테스크하거나 범죄를 추앙하는 것이 아닌 지적인 이야기를 통해 유영철 사건과 관련한 이슈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그로인해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나 그를 체포하기 위해 노력한 관계자들, 사건의 뒤에 실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당시 기사를 통해 사건 담당 형사들을, 당시 판례를 보며 담당 판사, 검사, 변호사들을, 사건 현장에 가서 주변 탐문을 통해 피해자 가족들을 수소문했고, 이들의 기억을 통해 유영철의 범죄 행각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유영철 사건을 담당하며 통해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로 소개된 권일용 교수를 비롯해 형사, 과학수사관, 수사 팀장 등 다양한 사람들이 유영철의 범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김희숙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 팀장은 "현장 감식을 하면서 에어컨 환풍기 위에서 발자국이 발견됐다"며 "사건 현장의 발자국이 모두 동일하다는 걸 확인하고, 연쇄살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경찰이 연쇄살인을 인지한 후 유영철은 자취를 감췄다. 그때 다른 곳에서 유영철의 흔적이 나타났다. 당시 여성 최초로 서장으로 임명된 김강자 종암경찰서장은 '미아리 텍사스촌' 등 윤락업소 등을 집중단속했다. 이 과정에서 사라진 성매매 여성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김 전 서장은 "업소에서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지만, 그 밖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여자들을 불러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 소속이었던 양필주 형사는 유영철에 대해 "처음엔 여성들을 불러 대화를 하고, 라면도 끓여 줘서 같이 먹는다"면서 그 이후에 살해 행위가 이뤄졌다고 소개했다.
쉽게 검거되진 않았다. 심지어 운 좋게 유영철을 잡아 놓고, 그가 자기 입으로 범죄를 떠벌려도 증거가 없었다. 여기에 수사를 받던 유영철을 혼자 두고 담당 경찰이 나가면서 탈출하기까지 했다. 이를 숨기기 위해 경찰은 검찰에 "석방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이후 11시간 만에 유영철은 다시 붙잡혔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어머니를 경찰이 발로 차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게 한 모습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당시 유영철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만큼, 그와 경찰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목이 쏠렸는데, 돌발 상황을 막지 못한 경찰들은 승진에서도 모두 미끄러졌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유영철을 통해 경찰들은 "시스템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희대의 살인마가 등장해 20명이 희생되면서 얻어낸 결과다.
김 팀장은 "요즘은 과학수사의 시스템, 형사들이 수사 능력이 망라돼 사건을 해결해 간다"며 "특히 서울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대부분은 해결된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자평했다.
2004년 12월 유영철은 20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현재까지 사형수로 복역 중이다.
넷플릭스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
공개일 2021년 10월 22일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별점 IMDB 6.3/10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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