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제자백가] '현자타임'을 느끼는 사람들

입력 2021-11-08 17:27   수정 2021-11-09 00:03

‘현자타임’이라고 들어봤는가? 사람이 갑자기 현실을 자각할 때 찾아오는 짙은 허무함과 무력감을 말한다. 줄여서 ‘현타’라고 하는데 지금 많은 한국인이 그 현타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불거진 설거지론도 그런 맥락하에 있다고 보는데 왜 사람들은 현타를 느꼈을까? 바로 신뢰의 문제가 있다. 한국 사회의 신뢰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상앙과 한비자, 오기 이런 법가 사상가들의 삶과 텍스트를 보다 보면 이들은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신뢰를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치에서 거듭 신뢰를 역설했는데 왜 이렇게 신뢰라는 정치적 자산과 사회적 자원에 집착했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이들이 개혁가였기 때문이다. 개혁은 이해와 손해가 차별적으로 부과되고 이익 수혜의 편차가 있다. 강한 개혁일수록 그런 문제가 심해지는데 그렇기에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개혁은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 힘든 임무를 백성에게 부과했기 때문이다. 첫째보다 두 번째 이유가 중요한데 법가는 농전지사(農戰之士)라고 하면서 부국강병을 위해 전쟁과 농사를 강조했다. 힘들고 고된 일이며 다치기 쉽고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전국시대라는 상황에서 반드시 많은 사람이 매달려 수행해야 할 임무였는데 법가는 신뢰가 있어야 백성들이 그 힘든 농사와 전쟁에 기꺼이 나선다고 생각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공동체의 안위와 부강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힘들고 고되고 위험하고 당장의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동체 존속을 위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있는데 신뢰가 무너지면 누가 그런 일들을 하려고 할까? 고생하면서도, 목숨을 걸면서도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이래야 하고 먼 미래에라도 나에게 올 보상이 있기나 할까? 의심하고 불안해하면 그 사회는 외적이 쳐들어오기도 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변방에서 얻은 이익은 모두 병사에게 돌아가게 하고, 시장에서 얻은 이익은 모두 농민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변방에서 얻은 이익이 병사에게 돌아가는 나라는 강성하고, 시장에서 얻은 이익이 농민에게 돌아가는 나라는 부유하다.”

상군서 내외편에 있는 말이다. 부국강병을 위해 법가는 농사와 전쟁을 끊임없이 주문하고 동원 체제를 유지했기에 그들에게 신뢰는 너무도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보상을 준다는 약속에 절대 어김이 없다는 걸 명확히 했는데 신뢰가 있어야만 국민에게 힘든 일을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을 해보자. 이 같은 이유로 법가는 신뢰를 강조하고 중시했는데 한국은 과연 국민이 성실하고 헌신하게끔 사회적 신뢰가 담보된 사회인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헌신과 희생, 성실을 제대로 인정·존중해주고 보상해주는 사회인가? 헌신과 희생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너무 잘살고 있지 않은가? 헌신과 희생, 성실에 대해 인정해주기는커녕 조롱하거나 조소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대표적으로 병역 문제 말이다. 그리고 이번 정권 들어 우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떡을 주지 않았나? 민주와 진보, 민족 이런 간판을 내걸고 부정부패로 사익을 추구하는 이가 많지 않은가? 세금을 탕진하는 시민단체는 왜 이리 많은 것일까? 상황이 이러하니 사회의 신뢰는 탕진될 수밖에 없다. 헌신과 희생, 성실이 대접받지 못하고 거짓 약자들의 집단이기주의가 과하게 보상받으면서 멍들어가는 사회에 신뢰는 있을 수 없다. 지금 한국 사회는 사회적 신뢰가 추락하고 있고 이번 정권의 과오 중에 가장 큰 것이 신뢰 자산의 탕진인데 설거지론이 괜히 등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하층민 남성들의 푸념이 아니다. 신뢰의 소멸이라는 맥락을 봐야 하는데 현재 많은 이가 현자타임을 느끼고 있다. 떼를 쓰며 우는 사람들보다 자기 자리에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거짓 없이 사는 사람들이 현실을 자각하며 허무함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서 성실히 일해야 하나? 나의 희생, 헌신, 성실이 집 밖 사회이든 집안 가정이든 인정받고 존중받고 있는가? 하는 회의를 느끼고 있다.

많은 이들이 정권 교체를 원하고 있다. 정권이 교체된다면 무엇보다 신뢰의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 신뢰 복원에 가장 큰 힘을 기울였으면 하는데 그 신뢰를 다시 세우기 위해 다음 정권은 부패의 구더기, 무임승차 기생충들에게 철퇴와 쇠망치를 내렸으면 한다. 그것이 작금의 시대정신이라면 시대정신일 것이다. 국민에게 강한 소구력을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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