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유학 온 미대생 청년은 늘 고향인 제주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마음을 가득 채운 그리움은 고향의 자연을 닮은 새벽 도시 거리의 고요함을 볼 때만 잦아들었다. 청년은 그 새벽 풍경에서 얻은 영감을 동판에 새기기 시작했다. 어딘가 신비로우면서도 향수를 자극하는 그의 동판화는 한·중·일 미술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명성을 안겨다 줬다. 미대 교수로 정년을 바라보는 지금, 그는 다시금 청년의 마음으로 돌아가 동판화 도구를 놓고 캔버스와 유화 물감을 꺼내들었다. 강승희 작가(61) 얘기다.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10일 ‘강승희 유화전’이 개막한다. 동판화 작가로 일가를 이룬 뒤 돌연 유화 작가로 변신한 그의 그림 33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제주에서 태어나 홍익대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한 강 작가는 20대 후반부터 동판화 작업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1987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한 데 이어 1991년에는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해 일본 와카야마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는 1만5000여 명의 참가자 중 2등을 차지했다. 34세이던 1994년 추계예술대학 판화과 교수가 됐다. 그의 동판화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영국박물관, 중국 충칭미술관 등 각국 주요 미술관에도 소장돼 있다.
평생 그려온 동판화 대신 유화를 그리기 시작한 이유가 뭘까. “요즘 젊은 작가들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 세계를 펼치는 걸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회화와 조형 작업을 병행하는 건 예사이고, 미디어아트까지 시도하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젊은 시절 전공한 서양화를 다시 심도 있게 그려보고 싶던 차였는데 나도 못할 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판화를 할 때 쓰는 화공약품을 오랫동안 들이마신 탓에 건강이 상하고, 나이 때문에 동판에 그림을 새기는 작업이 힘들어진 것도 한몫했죠.”
회화 작업은 녹록지 않았다. 오랜만에 그린 그림은 동판화 작품 수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혼자 눈물을 흘렸고, 캔버스를 찢고 불태우기도 했다. 강의를 비롯한 학교 일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기 위해 깊은 밤과 새벽에만 그림을 그리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강 작가는 “60년 넘는 내 삶에서 가장 치열하고 처절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간신히 찾아낸 정답은 자신이 여태껏 만들어온 동판화 속에 있었다. 그는 판화에 쓰는 도구인 스크래퍼와 바늘, 동판을 닦는 망사를 통해 유화에 동판화 기법을 접목했다. 바늘로 점을 찍어 무수히 많은 도시의 건물들을 표현하고, 푸른색과 흰색 물감을 스크래퍼로 뭉개는 식이다. 수없이 물감을 겹치고 뭉개는 작업 과정 때문에 작품의 표면은 거친 듯 부드럽다. 그 덕분에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고요하면서도 새로 시작될 하루를 품고 있는 새벽 공기 특유의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새벽 공기 속 도시와 한강변, 산속 숲 사이로 난 작은 길, 달빛에 설핏 실체를 드러내 보이는 자작나무 몇 그루, 칠흑 같은 삶을 넘어 새벽이 밝아오는 풍경…. 강 작가의 이 모든 그림들 속에는 제주의 바닷빛을 닮은 푸른색이 담겨 있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그의 그림을 두고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품은 색감, 질감과 분위기를 새벽이라는 소재로 표현한 작품들”이라며 “하루의 경계라는 새벽의 특성을 차별화된 동판화적 기법으로 표현했다”고 평했다.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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