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유럽발(發) '디젤게이트(경유차 배출가스 조작사건)' 이후 내리막길을 걷던 경유차가 이번 '요소수 대란'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됐다. 퇴출 시계가 한층 빨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급한대로 자동차용 요소수 2~3개월치를 확보했지만 수입처 다변화 등 근본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제2 요소수 대란'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경유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되는데 곧 판매량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강원 원주 지역의 국산차 판매직원 A씨는 "요소수 사태 터지고 나서 고객들 문의가 많다. 국산차 판매직 지인도 요즘 관련 전화를 하루에도 몇 통씩 받는다고 하더라"며 "특히 경유차는 장거리 운전 혹은 연비를 고려해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이브리드차로 변경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계약을 바꾸면 리셋(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 안 그래도 출고 대기가 평균 6~7개월인 상황에서 실제 계약을 바꾸는 경우는 드물다"면서도 "며칠 전 한 1t 트럭 계약자가 요소수가 필요 없는 2015년식 이전 차(경유차)를 계속 타겠다며 신차 계약을 무른 적은 있다"고 귀띔했다.
디젤게이트가 터지기 전인 2015년식 이전 경유차는 요소수를 넣을 필요가 없다.
렌터카 업체에도 차량 변경 문의가 쏟아졌다. 제주 지역 렌터카 업체 직원 B씨는 "승용차는 사실 요소수 문제에 큰 타격은 없고 렌터카는 며칠 쓰는 수준인데도 고객들이 불안한지 문의를 종종 준다"며 "오늘(10일) 연비 문제로 카니발 디젤차를 예약한 분이 가솔린차로 바꿀 수 있냐고 연락 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요소수 품귀 사태로 경유차 이미지가 또 한 번 추락한 것. 지난 9일 한 인터넷 카페에는 "팰리세이드 디젤차 출고 10일을 앞두고 계약 취소를 고민하고 있다. 요소수 대란도 언제 해결될지 모르겠고, 나중에 중고로 팔아도 제 가격을 받기 어려울 것 같다"며 "하이브리드 차를 계약하자니 1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참 고민된다"는 글이 올라왔다.
경유차는 이미 2015년 디젤게이트 파동으로 위기를 맞았다. 당시 52.5% 점유율로 휘발유차(37.2%)를 압도하던 국내 경유차 비중은 매년 줄고 있다. 제조사들도 환경 규제에 대응해 내연기관차 종말을 선언하고 디젤차 단산 혹은 단종 작업에 나선 상태다. 업계에선 경유차 퇴출이 가속화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3년(2018~2020)간 신규 등록된 차량 중 연료별로 보면 유일하게 경유차 등록 대수만 하향세를 나타냈다. 경유차는 2018년 79만3702대에서 2019년 65만7693대, 2020년 58만9112대로 판매량이 감소했다. 연료별 점유율 기준으로 경유차 비중은 2018년 43%에서 작년 30%대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친환경차(하이브리드·전기·수소차) 비중이 6.8%에서 11.8%로 꾸준히 높아진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역시 상황은 좋지 않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10월 경유차 누적 판매는 36만8593대로 작년 같은 기간(49만7314대)과 비교해 25.8% 줄었다. 월간별 수치를 봐도 경유차 점유율은 올 1월 31.3%에서 지난달 16.5%로 뚝 떨어졌다.
반면 올해 들어 친환경차(하이브리드·전기·수소차) 판매는 작년 동기 대비 50.2% 늘었다. 월별 판매량으로 봐도 지난 1월 친환경차 판매는 1만6012대에서 지난달 3만1036대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을 감안해도 경유차가 시장의 선택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요소수 사태는 휘발유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주유소에 기름을 운반하는 탱크로리(디젤 트럭)가 요소수에 발이 묶일 경우 휘발유 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일부 주유소에선 재고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안다"며 "요소수가 중국에서 들어와서 당장은 시름을 놓았으나 이런 문제가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석유유통협회는 정부에 '기름 대란'을 막기 위해 탱크로리 등 연료수송 차량을 요소수 우선공급 대상에 포함해달라고 건의했다. 반면 충전 인프라 등 문제로 판매 한계를 지닌 기존 전기차의 평판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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