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보다 많은 액수를 부과받은 LG전자가 이에 불복해 “과징금 일부를 필립스도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로 국내 법원에 소를 제기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필립스 측 손을 들어줬고, LG전자가 항소해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넘어갔다.
LG전자와 필립스는 브라운관(CRT) 사업을 위해 2001년 합작회사 LPD를 설립했다. 두 회사의 이 동맹은 브라운관 대신 LCD(액정표시장치) LED(발광다이오드) 등이 디스플레이 시장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2006년 1월 끝났다. 문제는 EC가 LPD 파산 이후인 2007년부터 CRT 가격 담합행위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LPD가 담합행위에 참여한 정황을 확인한 EC는 5억6000만유로(약 767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EC는 과징금 중 3억9000만유로(약 5340억원)에 대해선 LG전자와 필립스가 공동으로 부담하고, 나머지 1억7000만유로(약 2330억원)는 LG전자 단독으로 내도록 했다.
LG전자가 부담해야 할 과징금이 더 많았던 것은 필립스가 2007년 EC에 담합 자진신고를 하면서 과징금 감면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EC는 필립스의 과징금 30%를 깎아주는 대신 그만큼을 LG전자에 부과했다.
이에 대해 LG전자 측은 “담합행위를 한 것은 잘못했지만, 유럽 시장에서 완제품을 많이 판매했고 과징금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친 필립스가 과징금을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LG전자는 2018년 국내 법원에 구상금 소송을 냈다.
필립스 측은 “과징금 구상은 합작계약과 관련한 분쟁이므로 중재합의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LG전자는 “합작계약은 사업관계 이행과 관련한 내용인데 구상금 청구는 과징금 중 일부를 반환해 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관련성이 없다”며 “국내 법원에서 판단을 받을 수 있다”고 맞섰다.
구상금 액수를 두고서도 양측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LG전자에 따르면 2007년 EC는 LPD가 다른 고객사에 직접 판매한 CRT 매출에 비례해 전체 과징금 중 37%를 부과했다.
나머지 63%는 LPD가 제작한 CRT를 LG전자와 필립스가 각자 TV에 장착해 만든 완제품(TPDS) 매출에 비례해 부과했다. LG전자 측은 “각자 판매한 완제품 매출 비율은 LG전자가 14%, 필립스가 86%”라며 “LPD가 직접 판매한 매출에 대한 과징금은 합작사 지분 비율인 50%씩 부담하되, 각자 판매한 완제품 과징금에 대해선 필립스가 86%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경쟁적 폐해를 더 많이 일으킨 필립스가 그만큼 과징금을 더 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필립스 측은 “구상금 청구 자체가 근거 없다”며 “설령 구상금을 내야 한다고 하더라도 TPDS는 완제품 매출이 아니라 변형 제품에 탑재된 CRT 매출이기 때문에 지분 비율에 따라 50% 부담하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법조계에선 다음달 선고가 이번 소송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국제중재 변호사는 “사건이 뉴욕 중재로 넘어가면 LG전자는 필립스에 이미 납부한 과징금을 공동 분담하자고 요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이번 소송 판결에 따라 두 회사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한종/최진석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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